카테고리 없음

다낭 3박

idlemoon 2018. 2. 9. 02:07

한 계절에 감기가 두 번 걸린 건 처음인 것 같다. 나이가 드니까 확실히 추운 게 더 견디기 힘들어진다. 몸 상태가 약간 안 좋았지만 이미 계획된 거라 요즘 '핫' 하다는 베트남의 다낭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봄 날씨를 기대했는데 완전히 예상을 빗나갔다. 첫날은 추운데 비까지 왔고 밤에 호이안 야경을 구경할 때는 찬 바람이 불어 거의 초겨울 느낌이었다. 둘째 날은 바람은 줄어들었으나 오전에 바나산에서는 안개가 잔뜩 끼어 구경을 제대로 못했다. 마지막 날(3일째) 오후에 겨우 해를 볼 수 있었다.

 

가는 날 인천공항에서부터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 있었다. 감기약을 사기 위해 터미널에 있는 약국에 들렀는데 동네 약국이라면 만 원 정도 할 것을 무려 32,000원을 받았다. 내가 왜 가격을 먼저 물어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장소 때문에 어느 정도 비쌀 건 예상했지만 좀 심했다. 얼마 전에 본 다큐멘터리에서 한때 잠시 의사였던 사람이 한 말이 기억났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가지고 돈을 벌고 싶지 않다고 했다.

 

호이안에 갔을 때 일행 중 한 명이 실수를 했다. 시장에서 뭔가를 사고 돈을 잘못 준 것이다. 아마 물건 가격이 25만 동(VND)인데 250달러를 준 모양이었다. (250,000로 표기되어 있었을 테니 250달러로 착각할 수도 있다.) 25만 동이면 12달러 정도밖에 안 된다. 그 사람은 당연히 다시 가서 남은 돈을 돌려받으려 했고 가이드는 "소용없다, 싸움만 날 뿐이다"고 말렸다. 그래도 그 사람은 너무 억울하니까 현지인 보조 가이드를 대동하고 찾으러 갔으나 역시 소용이 없었다.

 

그날 밤, 누나와 매형과 함께 호이안 야시장을 구경하다가 매형이 한 노점에서 조그만 잡화 한 가지의 가격을 물었다. 기껏해야 몇 달러 수준일 거라고 예상한 건데 두 개에 40달러를 불렀다. 매형은 너무 터무니가 없어서 바로 돌아서서 걸어갔는데 그 남자애가 튀어나오더니 깎아주겠다고 했다. 매형은 바로 뿌려쳐 버렸으나 그 애는 계속 따라오면서 "두 개에 20", 나중엔 "10달러"까지 말했다. 동남아 야시장을 여러 군데 가봤고 (베트남만 두 번째다) 비슷한 상황도 있었지만 이건 좀 심했다. 거의 20-30미터를 따라왔다. 말로만 한 것도 아니고 매형의 팔을 붙잡으면서 말이다. 나중엔 싸움이 나는 것 아닌가 두렵기도 했다. 손님을 붙잡으려 하는 사람은 보통 웃으면서 그런 행동을 할 수도 있는데 그 남자의 표정은 웃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호이안의 밤 풍경은 정말 예쁘다. 그러나 거기 있는 사람들은 장사꾼과 소비자들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곳이 처음인 젊은 커플에겐 매우 낭만적인 공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지인들에겐 생업의 장소일 뿐이고, 찬바람 속에 서 있는 감기 걸린 노인 관광객에겐 그냥 공허한 공간일 뿐이었다.

 

호이안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얼핏 봐도 역사적 가치는 있어 보인다. 가이드를 통해 역사 이야기도 조금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좀 더 역사를 배우는 여행이었으면 좋겠다. 패키지 여행이란 게 어쩔 수 없는 거긴 하겠지만.

 

--------------------------------------------

 

마지막 날 오전에 후에(Huế)의 왕궁에 들렀는데 그곳 가이드가 대단했다. 대학에서 한국어를 배웠다는데, 그렇게 계속 웃게 만든 가이드는 처음이었다. 농담들이 기억 안 나는 게 아쉽다. 하나 기억나는 건 "남는 건 사진이죠... 없어진 건 돈이고." 두 문장 사이에 적절한 공백까지, 매우 훌륭하다.

 

후에는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응우옌 왕조, 1802-1945)의 수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