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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도미사일

idlemoon 2019. 5. 26. 17:06

말실수(slip of tongue)는 'Freudian slip'이라고도 불리는데 프로이드가 그걸 분석하면서 유명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정신분석학적으로 해석하는 학자는 많지 않다. 무의식이 관계한다고 할지라도 '억압된 욕망' 같은 건 아니라는 것이다.

말실수의 한 가지 흔한 형태는 'anticipation'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나중에 나올 소리가 성급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유명한 예로서 테드 케네디 의원이 교육에 관해 연설하던 중 "Our national interest ought to be to encourage the breast..."라고 실수한 적 있다. 그가 말하려던 건 "encourage the best and brightest"였다. 국가 이익을 위해서 우리는 뛰어난 아이들을 장려해야 한다는 것이 '가슴'을 장려해야 한다가 됐던 것이다. (그는 즉시 말을 고쳤다.) 여기서 뒤에 나올 'r' 소리가 앞당겨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best -> brest. 다음처럼 일부가 생략된 걸로도 볼 수 있겠다: the best and brightest. 사실, 소리만 '브레스트'였지 그게 breast를 의미한 걸로 단정할 수 없다.

또 흔한 형태는 비슷한 소리의 다른 단어로 치환되는 것이다. 만찬에 초대된 손님이 주인에게 'hospitality'(환대)에 감사한다고 말할 걸 'hostility'(적의)라고 하거나, 여자가 남편의 전애인에게 "Nice to beat you"(meet -> beat)라고 잘못 말하는 경우다. 미국이 오사마 빈 라덴을 암살했을 때 한 평론가가 "Obama is dead and I don't care"라고 한 적도 있다.

이런 경우는 잠재의식을 거론할 수도 있겠다. 그 평론가는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이었고, 그 여자도 남편의 그 전애인을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억압된' 욕망이라고 하긴 어렵다. 그 평론가는 오바마에 비판적임을 스스로 알고 있었고, 그 여자도 적개심이 (있었다고 해도) 무의식 상태는 아니었을 것이다.

어쨌든 어떤 생각이나 단어가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으면 그게 영향을 미치는 건 분명해 보인다. 레스토랑에서 동료와 식사할 때 그가 찬 시계(watch)가 매우 고급스럽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종업원(waiter)을 부르면서 'watch'라고 잘못 말하는 경우 같은 것이다.

문재인의 '단도미사일'도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탄도미사일'이란 단어를 쓰면 안 된다는 바로 그 생각 때문에 그 단어가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었고, 그래서 '단거리미사일'이라고 하려던 게 부분 치환되어 '단도미사일'이 된 걸로 추정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말실수를 한다. 평균적으로 단어 1000개에 한두 번 실수를 한다고 한다. 시간으로 따지면 연속 7분 말할 때 한 번 정도가 된단다. 그래서 문재인의 말실수 자체는 별것 아니다. 내가 보기에 문제는 즉시 그 실수를 고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별 신경 안 쓰고 넘어가는 실수들이 많다. 그러나 이 경우의 '탄도미사일'은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단어이다. 그런 건 (테드 케네디가 '브레스트'를 즉각 수정했듯이) 즉각 수정하는 게 상식이다. 그러지 않은 건 두 가지 방향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이 방면에 무지하여 '단도미사일'이란 용어가 없다는 걸 몰랐다는 것이다. 즉 '단거리미사일'이나 '단도(短道)미사일'이나 그게 그거 아닌가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는 거다. 또 하나는 두뇌가 퇴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끝으로 재밌는 말실수 하나를 소개한다. 조지 W 부시의 것이다.
"I'd like to spank all teachers." (thank -> spank)

참조: https://www.psychologytoday.com/us/articles/201203/slips-the-tong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