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lemoon 2007. 9. 6. 01:01

아흔이 넘은 이후로 뇌가 급격히 쇠퇴해진 아버지가 어제 아침에 계단에서 넘어져
머리에 피를 잔뜩 흘리고 응급실에 실려갔다. 사진 찍고, 봉합 수술하고, 수액 맞고
그러고 오후에 집에 왔는데 전혀 기억을 못하신다. 병원에 있을 때도 "여기 왜 있냐,
집에 가자"란 말을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다친 과정을 기억하지 못해도 자기 몸에
상처가 있고 붕대가 감겨져 있으면 다쳤나부다 할 텐데, 그런 자각조차 불분명한
것 같다. 약 드셔야 한다고 하면 "나 안 다쳤다"고 한다.

어릴 때, 나의 내성적인 성격을 교정하기 위해 어머니가 날 태권도를 배우게 하셔서
한 몇 달 도장에 다닌 적이 있다. 그 초기였던 것 같은데, 사범과 대련(이라기 보단
대련 연습)하다가 한 방에 나가 떨어졌다. 그리곤 일어나서 창가로 가 거기에 걸터
앉았는데, 밖을 내다보며 "여기가 어디지? 내가 여기 왜 있지?"란 생각을 했다 -
정확히 그렇게 문장화된 건 아니지만 그런 내용이었다. 곧 기억이 돌아왔고, 그리고
그런 순간적 기억상실은 별로 특이한 게 아닐 것이지만, 내가 얘기하고 싶은 건 왜
일어나서 창가로 갔는가 하는 것이다. 반쯤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인데, 무슨 논리가
없지 않은가? 정신분석학적으로 해석해야 할 것일까. 그때 사범의 눈엔 내가 어떻게
비쳤을까. 애가 맞고 넘어지더니 일어나서 아무 말 없이 창가로 가 걸터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