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천 2010
idlemoon
2010. 7. 25. 01:11
사랑스런 그대 (The Loved Ones, 숀 번)
줄거리만 보면 새로울 거 하나 없는 장르영화인데, 꽤 신선한 느낌을 준다. 배우들이 모두
낯선 것이 한 요인일 것 같다. 그리고 고문의 방식이 새롭다. 예를 들어 드릴로 이마에 뇌를
건드리지 않을 정도까지만 구멍을 뚫은 다음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윽!). 그리고 뭐랄까,
할리우드라면 잔인하다 해도 넘지 않는 선 같은 게 느껴지는데, 여긴 그런 게 없다. 나중에
남자가 스스로 묶인 걸 풀고 공격할 때는 나도 그와 함께 팔을 휘두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장르영화를 보면서 이런 걸 느낀 건 아마 수십 년 만일 거다. (뭐, 근래에는 이런 류의 영화를
거의 본 적이 없기는 하다.) 이 영화에서 특히 칭찬할 만한 것은 주인공의 그 끔찍한 경험이
하나의 메타포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주인공은 최근에 자신의 운전 부주의로 아버지를 죽게
했고 그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렸는데, 그의 이 지옥 같은 경험은 그 죄책감 혹은 속죄에 대한
은유로 볼 수 있다. 집에서 초조히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와 포옹하는 것으로 이 영화는 끝을
맺는다.
못말리는 세 친구 (3 Idiots, 라즈쿠마르 히라니)
근래에 본 인도영화, <블랙>이나 <신이 맺어준 커플> 등과 비교할 만한 영화. 그 둘에 비해
좀 중구난방의 느낌이 있지만, 코메디는 상당 수준이다. 여태 영화제에서 본 영화들 중에서
관객들이 가장 많이 웃은 영화가 아닐까 싶다.
윈/윈 (Win/Win, 야프 반 휘스든)
천재적인 수완으로 증권회사에서 승승장구하는 직원인데, 약간의 자폐장애가 있는 듯하다.
프런트에서 일하는 한 여자에게 관심을 가지지만 여자에게서 성적자극을 정상적으로 받지
못하는 것 같고, '여자'를 너무 모르는 것 같다. 그 여자가 주인공에게 백금 시계가 어울릴
것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나중에 그가 여자에게 백금시계를 선물한다. 그것도 남자용.
(여자는 물론 받지 않고 떠난다.) 자신과 달리 계속 죽 쑤는 동료 직원 - 한국 출신이다 -
에게도 관심과 동정을 표하는데, 그런 것을 보면 동성애자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캐릭터를
확실히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 "자폐"라고 했지만 그것도 확실하지 않다. '숫자에는 굉장히
능하지만 정서적 만족은 얻지 못하는 인간' 정도로는 규정할 수 있겠다. 그 동양인 직원은
결국 자살하고, 주인공은 모든 걸 버리고 떠나는 걸로 영화는 끝난다.
판타스틱 단편 걸작선 5
부천영화제에 출품하려면 적어도 사지의 하나는 절단하든지, 이마에 색다른 거 - 칼이나
송곳 같은 상식적인 거 말고 가령 우산이나 키보드 같은 거 - 를 꽂아야 할 것 같다.
엔터 더 보이드 (Enter the Void, 가스파 노에)
그림은 좋긴 하지만 내용이 너무 없다. 게다가 무려 3시간. 짜증이다. 이런 영화가 깐느
경쟁부문에 갔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제목을 잘 지은 것 같다. Enter the Void(無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