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2017 (3)
<전쟁 없는 20일>이 좋았기 때문에 게르만 회고전 하나 더 보자 해서 보았다. 실망시키지는 않았지만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One More Time with Feeling>은, 사실, 볼 당시에는 이해 못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충분히 즐겼다고 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영화는 완전히 몰입되었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이게 올 전주의 최고작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매우 특이한 러브스토리다. 한쪽 팔을 못 쓰는 늙은이와 자폐증(으로 보임) 가진 젊은 여자의 사랑. 배경도 특이하다. 소 도축장이다. 남자는 그 회사를 관리하는 이사("financial director")이고 여자는 새로 부임한, 소 등급을 정하는 "조사관"이다. 둘의 사랑은 둘이 같은 꿈을 꾼다는 (황당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다. 그 사실을 서로 알기 전에도 사랑이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만 적어도 그 사실은 둘의 사랑을 합리화한다. 같은 꿈을 꾸다니! 그런 사람을 만나면 당연히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건 한편으로 매우 안이한 방식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꿈에서 신이 답을 가르쳐줘 시험에 합격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어쨌든 보면서 거부감이 별로 들지는 않았다. 그냥 하나의 판타지로 보면 될 것 같다. 남자가 무지 부러웠다.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을 만났는데 추한 할망구라고 생각해보라.)
이 영화의 재미의 가장 큰 요소는 여자의 캐릭터다. "자폐증"이라고 했지만 그것에 딱 맞는 건지는 모르겠다. 자폐인데 저런 게 가능한가? 라는 의문이 몇 번 들었다. 영화 중에도 자폐증(autism)이란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똑똑하지만 연애에 대해서는 멍청한 (반여성주의적?) 전형을 다소 답습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재미는 있다. 매진된 걸로 봐서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제목 "On Body and Soul"에서 상당히 철학적인 영화를 기대했는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내가 뭔가를 캐치하지 못한 건지도 모르겠다만.
혼자서 처절하게 갱을 상대하는 홍콩 느와르처럼 (단, 초저예산 버전) 될 것 같다가 막판에 반전이 있다. 반자본주의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