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의 생명권
낙태죄 논란에서 핵심적인 요소가 '태아의 생명권'이다. 구체적으로는, 태아가 하나의 인간(person)인가, 인간이라면 정확히 언제부터 인간이 되는가의 문제이다. 여기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었던 걸로 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수정란이 언제 인간이 되느냐는 문제는 너무나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이다. 결론을 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 대신에 내가 제시하고 싶은 것은 태아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시점'을 기준으로 하자는 것이다. 갓 수정된 수정란이 고통을 느낀다고 주장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태어나기 직전의 아기가 고통을 느낀다는 건 말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그 중간의 어딘가에 '느끼는 시점'이 있을 것이다. 태아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걸 어떻게 아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근래에 동물의 의식(consciousness)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아직은 부족할지 모르지만 뇌나 신경구조의 분석을 통해 과학자들이 어느 정도 합의에 이를 수 있을 거라고 본다.
배아가 언제 인간이 되는가의 논의에서 일부 과학자들은 '뇌 활동'을 기준으로 하자고 주장한단다. 내 견해는 그것과 비슷하다. 그런 학자의 글을 내가 읽어본 건 아니어서 '뇌 활동'이 '고통 지각'과 실제로 (거의) 같은 걸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내 생각과 같은 게 주류는 아닌 것 같아서 피력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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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만이 문제라면 그럼 태아를 고통 없이 죽이기만 하면 괜찮다는 거냐는 반문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런 사람은 그래서 고통 여부와 상관없이 생명 그 자체가 소중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럼 생명은 왜 소중한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고통의 문제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생명을 가진 존재는 쉽게 - 여러 가지 이유로 - 고통을 느끼고 그래서 우리는 그런 존재를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를 공유해야 하는 것이다. 그게 도덕이다. 고통을 전혀 느끼지 않는 개체들만 있는 세상에서는 도덕이라는 게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