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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과 책임
idlemoon
2019. 3. 18. 01:12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예전에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에 대해 "통과 의례"라고 했던 적이 있고, 이것이 알려져 비난이 쏟아지자 그는 그 표현이 박왕자의 비극을 직접 지칭한 건 아니고 "금강산 관광 초기 신뢰 부족으로 겪었던 정치적 문화적 갈등을 총칭하는 것"이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그는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다. 하긴 알았다면 애초에 그런 발언을 하지 않았겠지만.
이념이 다른 두 체제가 만나면 '갈등'이 생긴다는 것에 동의할 수 있다. 피격사건이 '통과 의례'라는 주장도 - 표현이 좀 정교하지 않지만 - 받아들일 수 있다. 문제는 그 발언이 '용서'를 암시한다는 것이다. "통과 의례이므로 너무 따지지 말자"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필연이 꼭 용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좋지 않은 가정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범죄를 많이 저지르는 게 통계적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 이유로 그런 범죄가 용서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다른 체제가 만났을 때 갈등이 생기는 게 필연이라고 해도 그게 구체적 사건에서 책임을 따질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과학의 측면에서 보면 세상만사가 필연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죄를 따지고 있고, 따져야만 한다.
사람들은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 "어쩔 수 없었어요"라는 변명을 흔히 한다. '통과 의례'도 그런 변명의 일종이다. 그러나 그런 변명이 통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