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을 위한 변
황교안 전 총리의 등판에 대해 우파들이 꽤 비판을 한다. 좌파가 그러는 건 그러려니 하는데, 우파가 그러는 건 좀 이해가 쉽지 않았다. 대략 두 가지 방향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그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탄핵 후 그가 적극적으로 대여(對與) 투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황교안이 탄핵에 책임이 있다면 그것을 막지 못한 책임이라고 할 것이다. 그 자신이 탄핵의 원인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본다. 즉 그가 '국정농단'의 한 주역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국정농단이란 건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설사 있었다고 해도 그에게 직접적인 책임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랬다면 현정권이 가만 두지 않았을 것이다.)
탄핵을 '막지 못한' 것에는 두 단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애초에 '국정농단'이 발생하는 걸 막지 못했다는 것이고, 그 다음은 촛불집회로부터 시작한 탄핵 과정을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첫째에 대해 말하자면, 황교안이 '국정농단'을 막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나? 일반적으로 공직자가 다른 사람의 잘못에 책임을 지는 건 그 사람이 자신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었을 때다. 그러나 박근혜나 최서원 또는 기업 회장들은 (박근혜의 '죄목'이 많은데 가장 큰 것인 뇌물을 중심으로 논하겠다.) 그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지 않았다. 그래서 국정농단이란 게 있었다고 해도 그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상사의 죄에 대해 부하가 도의적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알고서 그냥 넘어갔다면 도덕적 잘못을 말할 수는 있겠지만 '책임'이란 단어는 맞지 않다. 그 죄를 몰랐을 경우에도 '무능'하다고 비난할 수 없다.
두 번째 단계에 대해 말하자면, 황교안이 촛불집회나 그 이후의 탄핵 과정을 막을 수 있었나? 대통령도 하지 못한 걸 국무총리가 못했다고 비난하는 건 지나치지 않나? 노력은 할 수 있었다고 주장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가령 태극기 집회에 가서 "탄핵 반대"를 외칠 수 있었을까? 그러나 공무원은 정치적으로 중립이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현직 국무총리로서 혹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그런 행동은 허용되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들에게 시위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대한민국에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있다. 폭력적이지 않는 한 정부 수반이 그런 요청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먹히지도 않았겠지만 말이다. 검찰이 편파 수사를 하는 걸 막을 수 있었을까? 그에게 그런 힘이 있었다고 보지 않지만, 있었다고 해도 총리가 검찰의 수사에 개입해도 되는 걸까.
당시 황교안 총리가 잘못한 게 없다는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다. 난 당시의 사실 관계를 충분히 알지 못하고, 관련법도 잘 모른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탄핵 관련하여 당시의 그를 비난하려면 먼저 공무원의 정치중립의 의미를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탄핵 과정에서 가장 큰 잘못은 사실 당시의 헌법재판소에 있다. 탄핵 소추에 찬성한 의원들도 물론 잘못했다. 그러나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터무니없는 이유로 B를 고소했는데 판사가 A의 손을 들어줬다면, A의 잘못도 있지만 더 큰 잘못은 판사가 한 것이다. 법은 정의의 최후의 보루여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게 가장 큰 문제였던 것이다. 헌재 재판관들의 책임이 가장 크고, 그 다음이 탄핵 소추한 의원들이고, 황총리는 책임이 있다고 해도 한참 밑이다. 그를 비난하더라도 순서와 경중을 따져야 할 것이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탄핵 후의 그의 행동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이제 공직을 떠났으므로 정치적 발언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태극기 집회 같은 데도 참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 비난이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황교안이 정치판에 들어서기로 마음먹지 않았다고 해보자. 그래도 그를 비난할 수 있었을까? 문재인 정부를 지난 2년 동안 공개적으로 강력하게 비판하지 않았다고 비난할 수 있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정치 입문 이전에 황교안을 비난할 수 있었다면 대한민국 국민의 대부분, 적어도 지식인이라고 할 사람은 모두, 대여 투쟁을 안 하면 비난 받아야 할 것이다. 물론 지식인으로서의 책임감은 있어야 하겠지만 ‘비난’은 심하다.
예를 들어 별로 유명하지 않은 한 교수가 갑자기 자유한국당에 입당하여 당대표에 출마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고 하자. 아마 아무도 그가 그동안 대여 투쟁을 하지 않았다고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깔볼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이 사람과 황교안의 차이는 무엇인가? 내가 보기에 핵심은 황교안이 지지도가 높다는 것, 그리고 상당수의 사람들이 “뭔데 이렇게 지지도가 높아?”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즉 뭔가 보여준 게 없는 사람인데 왜 지지도가 높냐는 것이다. 그래서 황교안에 대한 비판은 사실 그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황교안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지지해 달라고 한 적이 없다. 사람들이 그를 근거 없이 지지한다고 해도 그건 그의 잘못이 아니다.
이제 정치에 입문을 했으므로 지지의 근거가 있는지 없는지 드러날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그의 첫 기자회견은 나쁘지 않았다. 한 우익 평론가는 그가 기자회견 때 문재인처럼 A4를 들여다봤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문재인의 A4는 비서진이 작성해준 것일 텐데 황교안의 것은 거의 틀림없이 그 자신이 메모한 것일 것이다. 평소에 매우 날카로운 분석을 보여주는 평론가인데 아쉽게 여겨졌다. 우파는 섣부른 비판보다는 기다려 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