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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sociation

idlemoon 2014. 3. 31. 22:21

예를 들어, 학교에서 라틴어 문법이나 대수표에 집중하고 있을 때, 갑자기 연필을 잡고 있는
내 손가락에 주목하면서 내가 노랑과 분홍, 직선과 곡선의 조합을 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이전에 결코 본 적이 없으며 우주의 그 누구도 다시 볼 수 없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그 깨달음과 함께 세상의 모든 익숙한 것들이 주변에서 빠져나간다. 혹은, 책을 읽다
고개를 들고 방바닥에 맥박치는 햇빛의 사각형을 보면 그것이 그 장면 전체의 실체성에 도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밤이거나 낮이라도 비가 오거나 흐린 날씨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았다... 햇빛이
왜 그렇게 중요했는지 아직 이유를 모르겠다. 특이한 정신 상태가 스트로보에 의해 촉발되는
수가 있다는 것을 읽은 적은 있지만 내 경우에는 그런 건 없었다. 햇빛이, 특히 오후의 햇빛이,
비스듬하게 기울거나 베니션 블라인드에 굴절되거나 돌벽에 반사될 때 — 나는 그냥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었다.

-- Barbara Ehrenreich, from Living with a Wild God (Harper's 3월호에 전재)


저자는 주로 10대 때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나는 비슷한 경험을 대학 4년 때 처음 했다.
그날을 아직도 분명하게 기억한다. 공대의 한 건물 2층 창가에서 늦가을 풍경을 보고 있는데
어느 순간, 모든 것이 추상적인  패턴과 빛깔의 조합으로 여겨졌다(맑은 날씨는 아니었다).
그러면서 뭔가가 보인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게 여겨졌다.

내가 후에 만든 단편영화 <서울보다 낯선>같은 것들은 그런 경험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위 저자가 말한 것과 얼마나 같은 것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저자의 경우는 그런 상태가
자기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사물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걸 정신의학에서 dissociation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심하면
정신병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