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lemoon 2017. 6. 29. 03:00

제목도 그렇지만 앞 부분을 보면 '신과 같은 인간'에 대한 전망으로 책이 마무리될 것 같은데 막상 맨 마지막 챕터는 '데이터교(Dataism)'에 대한 것이다. 데이터교는 저자에 따르면 현 시대의 '종교'인 인본주의(Humanism)가 역할을 다하고 새롭게 나타날 궁극적인 종교이다. 쉽게 말하자면 '빅데이터'를 믿는(숭배하는) 것이다. 저자가 강조하듯, 구글이 당신보다 당신을 더 잘 알 수 있다. 의사가 당신의 건강에 대해 당신보다 더 잘 알듯, 구글은 당신이 직업을 선택할 때나 배우자를 선택할 때 - 몇 가지 개인정보를 제공하면 - 당신보다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많은 영역에서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나보다 더 잘 아는 세상에서 인간의 역할은 개인정보를 충실히 업로드하는 것이다. 즉 빅데이터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을 '종교'라고 부르는 것은애매하다. 우리가 빅데이트를 믿는다면 그것은 인간의 복지에 기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가지 편견과 오류를 가진 생물학적 인간보다 빅데이터를 분석한 인공지능이 더 현명할 수 있고 따라서 그의 판단에 의존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복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종교에서 인간이 신을 믿을 때는 그 신이 인간 복지를 위한 도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다. (물론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종교가 사회 통합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신앙을 가진 당사자가 그런 도구적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신을 믿는 것은 절대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숭배한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그러나 돈이 문자 그대로 신앙의 대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무리 돈에 집착을 한다고 해도 말이다. 데이터교도 이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 한다. '데이터를 믿는다'고 말을 할 수는 있지만 데이터를 궁극적인 가치로 간주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비교하자면, 인본주의에서는 인간의 복지가 궁극적인 가치이고 그래서 인본주의를 종교의 하나로 분류하는 것에 동의할 수 있다.) 데이터를 인류의 복지를 위한 도구로 간주한다면, '데이터교'는 인본주의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본주의의 연장선 위에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데이터교가 발전하면 인류가 (거의) 소멸될 것이라는 전망에는 동의한다. 돈을 숭배하는 사회에서 인간성이 상실된다는 말을 흔히 하지만 사실 그건 대개 말이 그렇다는 거지 정말 인간이 없어진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중요한 결정을 빅데이터/인공지능에게 맡기는 세상에서 인간은 정말로 있으나마나한 존재가 될 것이다.

 

그래서 데이터교는 인본주의의 연장이라는 나의 생각이 맞다고 해도 결국 인본주의의 종말로 귀착되는 결론은 마찬가지인 듯하다.

 

인류 종말의 더 강력한 이유는 끝에서 두 번째 챕터, 'The Ocean of Consciousness'에서 논의된다. 인간이 화학물질로 이루어진 기계에 불과하다면 (저자도 인정하듯이 이것은 100% 확실한 건 아니다) 언젠가는 인간의 외모나 능력을 개조하는 걸 넘어서 인간의 욕망을 개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수컷은 정력을 탐하고, 암컷은 외모를 탐해왔지만 그런 욕망 자체를 개조할수 있을 것이다. 정력과 외모에 관심 없는 '인간'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책에서도 얘기하듯 영생은 인류의 꿈이었다. 그러나 영생 따위에 관심 없는, 빨리 죽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인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인류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반박할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왜 살아남아야 하는가? 모든 인간이 죽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