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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golino Part 2

idlemoon 2011. 11. 1. 01:17

1989년에 피사(Pisa) 시당국은 우골리노 게라르데스카가 자기 자식을 먹은 혐의에 대한
재판을 연출했다. "주된 증인은 플로렌스 태생이며 시인인 단테 알리기에리"였다. 그러나
그의 증언은 모호했다. 일방적으로 보이기도 했으며, 항상 신뢰성이 있지도 않았다. 재판
결과는 무죄였다. 하지만 어느 우골리노? 실존 인물, 아니면 <신곡> 속의 캐릭터? (신곡
속의 우골리노는 실존 인물과 꼭 같지 않다. 자식들의 연령대만 해도 크게 다르다.)

우골리노의 후손들은 당연하게도 이 선조 얘기에 민감했고, "중상모략"이라고 비난했다.
2001년에 가도 게라르데스카 백작과 시당국의 지원을 받아 과학자들이 우골리노와 그의
아들 및 손자들의 시체를 발굴했다. 정말 식인 행위가 있었는지 밝히기 위해서다. 조사
팀장은 피사 대학의 프란체스코 말레니 교수였다.

처음엔 아무도 그 시신의 위치를 몰랐다. 과학자들이 성 프랜시스 교회의 분회당에서
남자 시체 5구를 발견했다. 사망 당시 그 5명 중 하나는 70을 넘었고 둘은 45-50이었으며
둘은 20대였다. DNA 분석을 통해 그 5명은 혈족이며, 중년의 두 명은 모친이 같다는 게
밝혀졌다. "그들이 맞다는 게 98% 확실하다"고 말레니 교수는 말했다. 그의 조사결과로
게라르데스카가의 명예가 회복되었다. 그 70대 백작은 이빨이 하나도 없었고 따라서 성인
4명은 커녕 아기도 먹을 수 없는 상태였다. 더구나 골수의 영양상태는 그 무덤 속 누구도
마지막 수개월 동안 단백질을 섭취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 Harper's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