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대한민국의 주적인가라는 유승민의 물음에 문재인이 대답을 회피했다.
그를 변호하는 게 가능한가? 일부에서는 '북한'이 우리의 적이 아니라 '북한군'이나 '북한 정권'이 우리의 적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문재인이 그것 때문에 모호한 태도를 취한 게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 생각이었다면 그냥 "북한이 주적이 아니라 북한 정권이 주적입니다"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북한'은 문맥에 따라서 북한군이나 그 정권을 의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남북한 사이의 전쟁"이 남북한의 민간인들도 서로 치고받고 싸운다는 의미는 아니지 않는가?
북한이 우리의 '적'일지는 몰라도 '주적'은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모호한 태도의 이유가 아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 생각을 했다면 그냥 "주적이란 표현은 잘못되었습니다"라는 식으로 말했을 것이다.
그걸 떠나, '적'과 '주적'의 차이가 뭔가? 북한이 적이지만 주적은 아니라는 게 무슨 뜻인가? 주적은 따로 있고 북한은 제2나 3의 적이라는 뜻인가? 그건 아니다. 이제는 북한 외에 '적'이라고 부를 만한 나라가 없기 때문에 '주적'이라는 단어가 사라진 것일 뿐이다. '적'으로서의 북한의 위상이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럼에도 '주적'이란 단어가 다르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살벌했던 냉전 시대를 연상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유승민이 '주적'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쓰이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 말을 한 것은 그 연상 작용을 이용한 것이라고 본다. 즉 그의 질문은 단순히 "북한은 우리의 적입니까?"라는 걸 넘어서 "북한 정권은 우리가 도저히 상종할 수 없는 끔찍한 공산당 집단입니까?"라는 것도 함께 물은 것이다. '햇볕정책'을 아직도 믿고 있는 문재인으로서는 후자에 "그렇다"라고 답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전자에 대해서도 문재인은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았을 것 같다. (오늘 뉴스에 보니 북한을 적으로 인정하더라만 그건 여론의 압박 때문일 것이고 토론 당시에 적으로 인정했을지 의문이다.) 적이라는 생각이 뚜렷이 있었다면 약간의 표현 차이 때문에 망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냥 인정하든지 아니면, 말했듯이, "주적이란 표현은 잘못되었다"고 했을 것이다.
중국은 북한의 동맹국이고 한국전쟁 때 대규모로 참여하기도 했기 때문에 중국 역시 한때는 우리의 적이었다. (사실 지금도 잠재적인 교전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관계가 개선되기 시작하면서 '적'이라는 말을 쓰지 않게 되었다. 문재인은 그와 비슷하게 북한에 대해서도 '적'이란 말을 쓰지 않는 게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이 되면 개성공단을 재개하겠다는 것에서도 그게 드러난다. 나로서 더 놀라운 것은 국민의 40%에 달하는 견고한 지지층이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