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에 이정미 소장대행이 "국정 공백 상태에 있고 그에 따른 사회적 혼란이 두 달 이상 계속되고 있어 마냥 재판을 계속할 수는 없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아, 기각하겠구나 생각했었다. 심리를 충분히 못할 상황이면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무죄 판결을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시간이 없다면서 유죄 판결을 하는 건 졸속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인 듯하다.
조갑제씨의 "KD코퍼레이션의 진실"이라는 글을 보면 실제로 졸속 판결이었다고 의심할 만한다.
이번 판결은 법보다 여론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선고문 서두에서 "국민은 그러한 헌법을 만들어내는 힘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그냥 법에 따라 판결을 하면 되지 왜 원칙적이고 당연한 것을 언급하나. 굳이 이 말을 하는 건 국민이 헌법 위에 있음을 - 이번 판결이 다소 헌법에 안 맞는 부분이 있을 수 있음을 - 암시하는 듯하다. 헌재 스스로 여론을 중시했음을 인정한 것으로 판단된다.
선고 후 국회 소추위원단은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 말은 두 가지 방향에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권력과의 싸움에서 국민과 법이 이겼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견 맞는 해석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이미 수개월 전부터 전혀 '권력'이 아니었다. 오히려 야당과 '촛불'이 권력이었다. 다시 말하면, 이번 헌재 재판은 권력과 국민의 싸움의 아니었다는 것이다. 대통령측은 헌재 재판관들에게 압력을 가할 힘이 없었고, 오히려 여론을 등에 업은 소추위원단이 훨씬 힘이 있었다.
그래서 첫 번째 해석은 어불성설이다. 두 번째 해석은 소추위원단이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에 자신이 없었다는 것이다. 어떤 공무원이 뇌물수수한 것이 확인되어 징역을 선고받았다고 하자. 이때도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를 거론할까. 그런 원칙적인 것을 언급한다는 것은 그것에 확신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국민주권주의'는 왠지 헌법을 무시하는 듯하고, '법치주의'는 탄핵 절차상의 문제로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국민주권주의의 부족함은 헌재 판결이라는 형식으로 보완되고, 헌재 판결의 부족함은 국민주권주의가 보완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