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국채 발행과 상환

idlemoon 2019. 1. 6. 01:54

신재민 사무관의 폭로 내용은 (KT&G 사장 건 외) 세금이 많이 걷혔음에도 추가로 적자국채 발행을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근데 좀 복잡한 것 같다. 정확히 뭐가 문제인가? 생각을 좀 정리해 보았다.

 

청와대는 왜 기재부 실무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채 발행을 하려고 했는가? 그게 경제논리가 아닌 건 분명해 보인다. 즉 세금이 많이 걷혔지만 빚을 더 내서 이듬해(2018년)에 신성장 산업 등에 많이 투자하는 게 국가경제를 위해 필요하다는 식의 (예를 들어) 판단을 한 건 아닐 거라는 말이다. 그런 논리였다면 떳떳하게 말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신재민의 폭로 이후 기재부나 청와대의 반응이 별로 투명하지 않았다.

 

국채를 발행하려고 한 이유는 정치적이었던 게 거의 확실하다. 김동연도 "정무적 판단"이라는 말을 했다. 구체적으로는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새 정부의 포퓰리즘적 정책을 위해 내년(2018)에 돈이 많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신재민의 폭로처럼, 새 정부가 전 정부의 빚을 줄이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둘 다일 수도 있다.

 

내가 보기에는 두 번째에 무게가 있다. 내가 "포퓰리즘"이란 표현을 썼지만 사실 그건 경제논리로 포장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저소득층에 돈을 푸는 건 인기 영합(즉 포퓰리즘) 행위로 볼 수도 있지만,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경제논리로 포장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역시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 객관적으로 보면 뻔뻔한 것일지 몰라도 어차피 그들이 마이크를 (언론을) 쥐고 있다.

 

반면 두 번째 이유는 정말 그들이 솔직하게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신재민의 발언을 의심할 이유도 없어 보인다. 일부에서는 2017년 봄에 정권이 교체되었기 때문에 국채를 발행하더라도 그건 새 정부의 빚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건 확실하지 않다. 현재 경제가 안 좋은 걸 과거 정부 탓으로 돌리듯이, 2017년의 빚 규모을 과거 정부 탓으로 돌릴 수 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마이크는 정부가 쥐고 있다. 해석이 모호한 상황에서는 목소리 큰 쪽이 먹힐 수 있다. 그리고 신재민의 폭로 후 기재부에서는 발행하려고 했던 4조원이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의 0.2%포인트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는데, 그게 새 정부의 빚이 되는 거라면 그런 변명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 국채를 발행했다면 그건 통계적으로 구 정부의 빚이 될 수 있다는 걸 기재부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GDP 대비 0.2%에 불과하다고 한 것도 궁색한 변명으로 보인다. 퍼센트가 얼마든 4조원은 적은 돈이 아니다. 그리고 '구 정부의 빚 증가'가 목적이 아니었다면 진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밝혔어야 했다. 그게 이유가 아니라는 말만 했지, 무엇이 이유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냐는 것이다. 전 정부의 빚을 늘리려고 (혹은 줄이지 않으려고) 한 건 정말 치졸한 - 문정부의 지금까지의 행태를 보면 전혀 놀랍지 않은 - 것이지만 도덕적 잘못 이상의 것이 있는가? 실제로 국채를 발행했다면 관련 법을 어기는 게 되는 것이었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어기는 것이었다고 해도 실제로 발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별로 문제가 안 될 것 같다. 예를 들어 사장이 직원들에게 경쟁사에 가서 비밀을 훔쳐오라고 했는데 반대에 부딪혀 포기했다면? 사장의 행위가 못된 것이었지만 법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건가?

 

(1조원 상환을 하려다 갑자기 번복한 사안도 있는데, 본질적으로 같은 문제인 것 같아서 따로 거론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