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이드'에 대해 갖고 있던 관념은 길 안내와 통역 그리고 유물/유적에 대한 설명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 여행의 가이드는 거의 엔터테이너였다. (나중에 들으니 모든 가이드가 다 그렇게
열심히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버스 안에서도 거의 쉬지 않고 대만에 관한 이야기나 가이드로서
경험을 이야기했다 - 웃기려고 노력하면서. 나이가 좀 있고 결혼도 한 대만 여자인데 경력이 20
년이 넘었단다. 우리말도 아주 잘했다. 깡패와 양아치도 구별할 줄 알았다.^^
패키지 여행이 다 그런 거지만, 반강제로 쇼핑하게 하는 건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 위에 말한
가이드도, 우리 일행 한 사람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우같이" 물건들을 사게끔 했다. 그런 것만
아니었으면 그 가이드는 좋은 인상으로만 남았을 텐데.
타이루거 협곡. 대리석을 비롯하여 각종 보석들이 생산되는 말 그대로 "보물의 계곡"이다. 암벽
에 길을 내느라 많은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에 "눈물의 계곡"이라고도 한단다. 대만 사람들이
"10년은 먹고 살 수 있는" 자원이 묻혀 있다고 한다. GDPx10년을 의미하는 거라면 대단하지만
실제로 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대만고궁박물관. 장제스가 대만으로 넘어오면서 본토에서 가져온 수많은 보물들로 그득하다.
세계 4대 박물관의 하나라는데, 소장된 유물 자체만 보면 충분히 그렇겠지만 장물 전시를 보는
듯하여 찜찜한 (나랑 - 한국이랑 - 상관이 없는 것이긴 하지만) 기분도 있었다. 본 것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한 덩어리의 상아를 깍아 만든 건데 공 안에 다시 공이 들어들어 있는 (총
21개나!) 구조이다. 각 '공'은 서로 떨어져 있어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각 공에 만든 구멍
(사진)으로 도구를 집어넣어 일일이 파낸 것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3대에 걸쳐 만들었다
고 한다. 전체 지름은 55cm 정도이다.
박물관 방문 시간은 한 시간이 채 안 됐다. 그 시간에 이런 '신기한' 것들이 있는 섹션을 관람
하게 한 건 그런 것들이 이 박물관에서 가장 (예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것이기 때문인지 아님
그냥 무지한 일반인에게 쉽게 어필할 수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마 후자일 것이다.
용산사. 어떤 면에선 이번 여행 중 가장 인상적인 곳이었다고 할 수 있다. 처음엔 불교 사원
으로 출발했는데 점점 도교 등 다른 종교의 신도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마당에서
향을 피워놓고 기도를 하는 모습에서 뭐랄까 어떤 정신적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어릴 때 그런 경험이 있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쨌든 뭔가 원초적이면서 아늑한(?) 기분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불그스름한 조명도 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개발이 덜 된 나라가 아닌,
매우 산업화된 나라에서 그런 모습을 본 게 더욱 인상 깊었는지 모른다.
여러 종교가 전혀 거리낌 없이 서로 어울려 있는 모습도 좋았다. 우리나라의 배타적 종교가
더욱 싫어졌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길거리에 커피전문점이 거의 없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스타벅스 같은
건 눈에 띄지 않았다.
이번 여행은 막연히 혹은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대만의 역사를 다시 들여다 보게 만들었다.
가이드는 어릴 때 학교에서 한국이 "형제 나라"라고 배웠음을 강조하였는데 그 말을 들으니
나도 그런 것이 기억났다. 그때 대만은 매우 가까운 '우방'이었다. 대부분의 나라가 70년대에
대만을 버리고 중국을 선택했지만 우리나라는 1992년에야 대만과 단교를 했다. 그만큼 친한
나라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