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구멍의 때를 벗긴 거라고 해야 할까. 10년만의 해외여행이었다.
하지만 오랜만이라는 사실보다, 적도 지방이라는 것이 더 깊은 인상을 남기게 한 것 같다.
적도 근처로 간 건 처음이었다.
구름에 가장 매료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그런 거였다.
(적도 지방이니 그런 구름을 볼 수 있다고 나름 판단했지만,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빛. 전문용어로 말하자면 'top light'다. 이건 확실히 적도에서만 볼 수 있는 거다.
속설인지 모르지만, 더운 지방에선 사람들이 느리다고 한다.
정말 기후 때문인지, 아니면 아직 개발이 덜 되어 그런 건지 여유가 있어 보였다.
전차가 올 때 뛰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뭐, 우리나라가 유별나긴 하다만.
전철 역에서 촬영한 적이 있는데, 몇 개 역을 거치는 동안에 아무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었다.
네 번째 역에선가 직원이 와서 찍으면 안 된다고 하긴 했다. (역사를 찍는 게 아니라 바깥을
찍는다고 했더니 그냥 갔다.)
들은 적은 있지만, 실제로 화장실에서 휴지를 쓰지 않는 걸 본 건 처음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손으로 먼저 (웁쓰) 한 다음에 손을 씻는 건지,
호스를 비데처럼 사용하는 건지. 어쨌든 거기가 젖을 텐데 뭐로 닦지? 안 닦나.
뭐, 우리 (서구식) 방식도 꼭 깨끗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종이를 쓰지 않는 건 분명 자원절약 하는 거다. 지구온난화가 문제되는 요즘 특히.
처음엔 쿠알라룸푸르에서 차를 렌트해서 다니려 했는데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직각 반듯한 길은 거의 없고, 길 이름도 모두 낯설다. 영어권에선 모르는 길이라 해도
길 이름에 사용된 단어는 대개 아는 것들이다. 그래서 기억하기 쉽고 잘 알아 본다.
하지만 'Jalan Tun Razak'은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린다. 도로표지가 많지도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운전대가 오른쪽에 있고 좌측통행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코타키나발루에선 결국 렌트했다. 도시가 작고 길이 단순해서 할 만했다 -
한 번 역주행을 하긴 했지만. 바다는 기대에 좀 못 미쳤다.
예전에 가 봤던 사이판 같은 에메랄드 빛 바다를 기대했었는데.
빛과 구름은 여전히 좋았지만 물과 해변만 따지자면 우리나라 해운대가 더 나은 것 같다.
숲 - 거의 정글 - 사이를 지나는 100년이 넘은 기차를 탄 시간이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좁고 냉방이 안 되고 화장실 냄새까지 났지만
골동품 같은 기차 - 아마 colonial history를 간직하고 있을 - 를 타고,
거기 시골 사람들 틈에 끼어, 열대우림을 지나는 경험을 또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