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시피 영어 표현에 "낙타의 등을 부러뜨린 마지막 지푸라기 (the last straw that broke the camel's back)"라는 게 있다. 여기서 그 마지막 지푸라기는 낙타 등이 부러진 '원인'이라고 하는 게 상식적이다. 그 지푸라기가 실제 기여한 것은 1%에 불과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백신 접종 직후 사망하는 기저질환자들이 대부분 이것과 같다고 본다. 의학적 측면에서 사망 원인의 99%가 기저질환이라고 하더라도 백신은 마지막 결정적 원인일 수 있다.
그 마지막 지푸라기를 등에 얹지 않았어도 기존의 짐만으로 몇 시간 후에 등이 부러졌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라도 그 지푸라기가 등이 부러지는 걸 앞당겼다면 '원인'이라고 하는 게 옳다. 마찬가지로 백신을 맞지 않았어도 어차피 한 달쯤 후 사망할 거였다고 해도 그 백신은 사망의 원인이라고 하는 게 옳다. (백신이 정말로 관계없는 경우도 있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는다. 백신 접종이 아니었어도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사망하는 게 가능하다. 다만 백신이 사망에 기여하는 게 충분히 가능하고 여기서는 그런 경우에 대해서 논한다.)
의료진이나 당국자들이 백신을 사망의 원인으로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이유는 이해한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들을 안심시키려는 목적이 없다면 백신을 사망의 원인, 적어도 원인의 하나라는 걸 인정할 거라고 믿는다. 백신의 '부작용'은 그들도 인정한다. 즉 백신이 부작용을 초래하는 걸 인정한다. 그런데 그 부작용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지 않는다. 바탕에 - 기저에 - 뭔가 있어야 한다. 즉 {기저의 조건 + 백신 -> 부작용}이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같은 구조인 {기저질환 + 백신 -> 사망}의 경우에도 백신이 사망을 초래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당국자는 "백신이 원인일 수 있는 걸 무조건 부정하는 게 아니라,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라고 반박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망자가 발생하면 일단 "기저질환자였다"고 발표한다. 마치 백신은 관계없다는 듯이. 그러나 부작용 발생자에 대해 "(이러이러한) 기저 조건을 가진 자였다"라고 말하는 걸 들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인과성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지 않은 것은 인과성이 없는 게 확인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제 실천적인 문제를 생각해 보겠다. 그럼 백신을 맞지 말라는 건가? 그건 아니다. 그러나 단순하지는 않다. 의료진은 종종 "접종하지 않는 위험이 더 크다"고 말한다. 이것은 코로나19에 감염된 후의 사망 가능성과 백신 접종 후의 사망 가능성을 비교하면 당연히 맞는 말이다. 그러나 코로나19에 감염될 확률도 감안해야 한다. 즉 {감염될 확률 x 감염 후 사망 확률}과 {접종 후 사망 확률}을 비교해야 한다. 이론적으로 감염 확률을 매우 낮추면 - 방역을 계속 철저히 하면 - 전자가 더 낮을 수 있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강한 방역 체제를 유지하는 건 국가적으로 엄청난 비용을 초래한다. 내 말은, 그래서, 백신 접종은 단지 위험성을 낮추는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의 문제라는 것이다.
새로운 얘기도 아닌데 장황하게 늘어놨다고 할지 모르겠다. 내가 이 글을 쓴 것은 백신 접종 자체보다 언어 사용의 논리성과 투명성을 말하고 싶어서다. 정치가들의 언어 왜곡에 신물이 났기 때문이다. 당국은 백신이 기저질환자들의 사망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그 사람들은 그걸 알면서도 국가 경제를 위해 기꺼이 감수하는 성숙된 모습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이 그렇게 성숙했다면 2016년의 그 촛불 광란은 없었을 것이고, 함량 미달의 인간들이 정권을 잡아 나라를 망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