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을 영화화한 <설국>(1957)을 보다가 그 소설을 다시 보고 싶어졌다. 오래 전에 읽었는데 무슨 내용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영역본을 읽었는데 가끔 한글본(민음사)과 비교해 보았다. 다른 데가 매우 많았다. 초반 몇 군데 예를 들겠다.
"손님은 대개 여행객들이죠. 전 아직 어리지만 여러 사람들 이야길 들어봐도, 마냥 좋아서 그땐 좋아한다는 말도 못한 사람이 늘 그리워져요. 못 잊는 거죠. 헤어진 후엔 그런가 봐요. 상대편에서도 기억해 주고 편지를 보내는 이는 대체로 그런 말들을 해요."
'그땐 좋아한다는 말도 못한 사람'은 게이샤가 좋아한다는 말을 못한 상대(손님)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러나 영어본을 보면 남자한테서 '좋아한다'는 말을 듣지는 못했지만 그걸 (좋아하는 걸) 느낀 사람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자면 고백을 하지 못한 순진한(?) 남자를 게이샤들은 기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편지를 보내는 건 그런 남자들이라고 한다.
"어려울 건 없잖아. 산에서 몸은 좋아졌어. 머리가 개운치 않아. 당신과도 산뜻한 기분으로 이야길 나눌 수가 없다고."
여자는 문을 내리깔고 말이 없었다. 이렇게 되면 시마무라가 거의 남자의 뻔뻔스러움을 남김없이 드러낸 셈인데도, 이를 기꺼이 이해하고 수긍하는 습성이 여자의 몸에 밴 것 같았다.
'어려울 건 없잖아'는 게이샤를 소개해주는 게 대단한 거냐는 말이다. '몸이 좋아졌다'는 건 영어본에 'too healthy'로 되어 있는데 문맥상 성욕을 느꼈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머리가 개운치 않아'는 'I keep having the wrong ideas'인데 상대 여자(코마코)를 그 성욕의 대상으로 삼고 싶은 마음이 자꾸 든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즉 코마코와는 친구처럼 대화만 하고 싶은데 성욕이 방해한다는 것이다. '기꺼이'는 영어본에는 없다.
그가 묻는 말에는 대답 않고 여자는 양팔을 빗장처럼 지른 채, 그가 요구하는 것 위를 눌렀는데 술 기운으로 힘이 모자라는지, "뭐야, 이건, 짜증나게. 아, 나른해, 이따윈" 하고 돌연 자신의 팔꿈치를 덥석 물었다.
영어본에는 '묻는' 말이 아니고 'coaxing' 즉 '구슬리는' 말이다. (시마무라가 여자의 기모노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가슴을 잡으려 하고 있다.) 팔을 문 건 힘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자신의 마음과 달리 팔이 꼼짝 않고 있으니 그런 것이다. '짜증나게'는 영어로 'What's the matter with you'이다. you는 물론 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