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LA타임스 기자로 한국에 주재하면서 쓴 북한인들의 삶에 관한 책이다. 저자가 여러 번 북한에 직접 가기도 했지만 외국인이 거기서 심층 취재를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므로 한국에 있는 탈북자들을 인터뷰한 내용이 중심이 된다. 주 배경은 함경북도 청진 지역이며, 6명이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 단편적으로 북한 이야기들을 많이 접했지만 이 책을 읽으니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잘 모르긴 해도 북한의 일상 삶에 대한 책으로서 가장 뛰어나지 않나 싶다.
1990년 소연방이 무너지면서 북한은 극심한 경제난을 겪었다. 소위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시기이다. 한 추청치에 의하면 그 기간에 북한에서 2백만 명이 굶어죽었다. 그런데 이 책도 인용하듯이, "한 명이 죽으면 비극이지만 천 명이 죽으면 통계"에 불과할 수 있다. 90년대 북한에 기근이 있었다는 건 들었지만 그런가부다 했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게 한 명, 한 명에게 어떤 큰 비극이었는지 알게 해준다. '굶어죽음'의 의미도 깨닫게 한다. 초근목피로 연명하다가 영양실조로 몸의 저항력이 떨어지면 가벼운 감기에 죽을 수도 있는데, 그런 것도 포함해야 한다.
그 6명의 사연이 다 절절하다. 저자가 글을 참 잘 쓴다는 생각도 했다. 이 책은 인터뷰를 그대로 옮긴 게 아니라 정리를 해서 서술했는데 그게 논리정연하면서 드라마틱하다. 또한 믿음이 간다. 인터뷰 내용이 중심이긴 하지만 최대한 팩트 체크를 하려고 했다. 특정 한 탈북자의 '회고록' 같은 것과는 다르다. (아마존에 보면 그런 책이 많다.) 한편 이런 책이 외국인의 손에 의해 나왔다는 게 아쉽다. 그리고 이해가 안 되는 건 이 책이 번역되어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남의 비극에 대해 이런 말 하기 미안하지만 아주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이었다. 출간된 지 (2010년) 오래된 책이 아니라면 내가 번역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중국어판도 있는 것 같다.
첫 챕터의 주인공이 미란(가명)이라는 여성이다. 그녀는 전기가 없어 칠흑 같은 그런 밤 속에서 준상(가명)이라는 청년과 데이트한다. 그들은 손을 잡는 데 3년이 걸렸고 뺨에 닿는 정도의 키스를 하는 데 다시 6년이 걸렸다.
저자는 "어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 많은 북한인을 만났다고 한다.
미란의 아버지는 6.25 전쟁 후 돌아오지 못한 국군 포로였다. 그는 낮은 출신 성분 때문에 광산에서 일했으며 68세이던 1997년에 사망했다. 그는 남한의 가족에게 자신의 죽음을 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마지막 단어는 "어머니"였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그들은 남한으로 가는 건 생각도 못했다. 그러나 이듬해에 미란과 둘째 언니, 남동생, 그리고 어머니는 중국으로 탈북했고 남한의 고모들과 연락이 되었다. 고모들은 처음에 당연히 믿지 못했다. DNA 검사도 요구했다. 그러나 그들이 중국에서 상봉했을 때 그들은 DNA 검사가 필요 없었음을 알았다. 닮은 게 바로 보였기 때문이다. 미란 가족 4명은 1999년 1월에 한국에 도착했다.
미란의 첫째 언니는 출신 성분에도 불구하고 미모와 재능으로 군 관리와 결혼했고 아이들도 있었다. 셋째 언니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한국에 온 미란 가족은 친척들 도움으로 쉽게 정착을 했으나 북에 남은 두 언니가 항상 마음에 걸렸다. 나중에 그 둘이 체포되어 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남쪽의 가족에게 그것은 하나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집안에 경사가 있어도 마음껏 기뻐힐 수 없었다. 어머니는 종교에서 위안을 찾았으나 미란은 신앙도 없었다. "그녀가 현대차를 몰 수 있도록 언니들이 궁극적인 대가를 치른" 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