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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선택

idlemoon 2021. 9. 4. 18:47

'역선택'에 대해 찾아보다가 영어의 adverse selection이란 용어가 '역선택'으로 번역되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이 용어에 대한 설명들이 이해하기 힘들었다. 내 나름대로 설명을 해보겠다. adverse selection은 시장 참여자들이 가진 정보량이 상이할 때 생기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중고차 거래에서 판매자는 차의 결점에 대해 잘 아는데 구매자는 모를 수 있다. 그래서 판매자는 차의 상태를 속이고 정상가보다 비싸게 팔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상태가 계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속은 걸 깨달은 구매자들이 거래를 피하게 된다. 그러면 판매자는 중고차 가격을 내리게 되고 그러면 이번에는 상태 좋은 중고차를 내놓는 사람이 없어지게 된다. (판매자가 이건 '진짜로' 좋은 중고차입니다라고 말하며 높은 가격을 받으려 해도 구매자는 믿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시장에는 질 나쁜 중고차만 남거나 아예 중고차 시장이 붕괴된다. 이것이 adverse selection이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용어 설명들을 보면 adverse selection의 'selection'이 판매자나 구매자의 어떤 구체적 선택 행위를 의미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그게 아니다. 여기서 '선택'은 진화론에서 말하는 선택과 비슷한 의미다. 즉 '자연 선택'의 그 선택과 비슷하다. 각 개체가 생존을 위해 최대한 노력한 결과로 특정 종이 살아남듯이 (선택되듯이) 각 시장 참여자가 자기 이익 극대화를 위해 노력한 결과로 나쁜 것들만 남게 (선택되게) 되는 것이다. '역선택'보다는 '역효과'가 더 직관적인 번역이 아닐까 싶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 adverse - 결과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역선택은 요즘 국민의힘 당에서 거론되는 역선택과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해야겠다. 이 후자의 역선택은 한 신문 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이 본선 경쟁력이 약한 국민의힘 후보를 국민의힘 경선 투표에서 전략적으로 찍는" 것이다. 역선택이 이런 거라면 당연히 방지해야 할 것이다. 논쟁거리도 안 될 것 같다. 그러나 조금 생각해보면 문제가 간단하지는 않다.

 

국민이 100명이라고 하고 그중 40명이 민주당 지지, 40명이 국민의힘 지지, 그리고 나머지 20명이 중도라고 하자. 그리고 국민의힘 경선에서 윤석열과 홍준표가 아래 표와 같이 득표했다고 하자. 그러면 민주당 지지자를 제외하면, 즉 "역선택 방지"를 하면 윤석열이 이기고, 방지를 안 하면 홍준표가 이긴다. 

 

 

본선(대선) 결과는 어떻게 될까. 민주당 지지자가 모두 빠져나간다고 가정하면 윤석열이 당연히 좋은 결과를 낼 것이다. 그래서 "역선택 방지"를 하는 게 옳다. 그러나 민주당 지지자가 모두 빠져나가지 않고 예를 들어 경선에서 홍준표를 지지했던 민주당 지지자의 절반 가량이 실제로 본선에서 홍준표를 찍으면 홍준표가 이길 수 있다. 앞으로 선거까지 몇 개월이 남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단정할 수 없다. 문제의 핵심을 말하자면, 민주당 지지자면서 홍준표를 찍은 사람 중에 일부는 전략적으로 그런 게 아니라 국힘 후보 중에서는 실제로 그가 제일 마음에 들어서 그런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나중에 실제로 홍준표를 찍을 여지가 있다.

 

그러나 내 생각을 말하자면 그런 가능성은 낮다. 지금처럼 좌우가 극단적으로 대립한 상태에서, 최재형 후보의 말처럼 "내전"과 다름없는 상태에서 민주당 지지자의 상당수가 국민의힘 후보 쪽으로 넘어올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해야 할 것이다. 표에서 보듯이 홍준표는 [국힘+중도]에서의 열세를 만회할 만큼의 표를 민주당 지지자에서 가져와야 한다. 국힘 지지자는 후보가 누가 되든 어차피 몰표를 준다고 하더라도 중도에서는 윤석열과 홍준표는 꽤 차이가 날 수 있다. 쉽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