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가끔 꾸곤 했던 꿈이 있다. '꿈'이란 단어가 딱 맞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반쯤은 깨어있는 듯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매번 비슷했다. 그 꿈의 느낌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죽음의 두려움'이 내가 말할 수 있는 최선이다. 일상에선
그런 걸 느껴본 적이 없다. 어떤 무서운 것에 맞닥뜨려 느끼는 공포 같은 게 아니라,
지독한 외로움에 가까운 그런 것이다.
내가 2000년에 만든 <서울보다 낯선>에 내레이션으로 써먹은 내용이다. 그 무렵
부터 그 꿈을 꾼 기억이 없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꾼 적이 없는 건 확실하다.
유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노인은 더 이상 '쓸모'가 없다. 재생산을 하지 못하니까.
물론 노인의 경험과 지식은 자손의 생존에 도움이 되고 그래서 가까운 유전자의
재생산에는 도움이 된다. 그러나 어쨌든 젊은이만큼 유용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진화론적으로 노인의 생존은 중요하지 않다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노인에게는
효용도가 낮다는 가정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하려는 말은 그러니까, 노인이 되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드는 것은
(줄어든다면) 그건 인생을 살면서 이것저것 많이 겪어서 생긴 심리적 결과이라기
보다는 진화의 결과 - 생물학적 현상 - 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5단계'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부정 - 분노 - 협상 - 우울 - 용납
뭐 그런 거. 어릴 땐 그게 그럴듯했는데 지금 내가 보기엔 엉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