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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보장용?

idlemoon 2017. 9. 18. 00:30

그저께 CNN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북핵은 체제보장용"이란 말을 했다. 그 말뜻은? 아마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일 테다. 즉 외부로부터의 침략을 억제(deter)하기 위한 것이지 남한이나 미국을 공격하기 위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북이 숱하게 쏟아놓은 협박성 발언은 잠시 잊고, 일단 그렇다 치자. 우선 앞뒤가 안 맞다.

 

대통령은 북핵이 "북한 자신뿐만 아니라 남북 관계와 세계 평화도 위협하는 대단히 무모한 선택"이라고 했는데, 북핵이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거라면, 왜 세계 평화를 위협하나? 앞뒤가 안 맞지 않나? 자신을 지키려는 행동이 왜 "무모한 선택"인가?

 

대통령은 이어 "핵과 미사일이 자신들의 안보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와 교류하고 협력하는 것이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것을 하루빨리 인식해야 한다"고도 했다. ?? 북핵이 체제보장용이라는 건가, 아니라는 건가? 북핵은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는 건가, 아닌 건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발언은 놔두고, "북핵은 체제보장용이다"라는 좌파들의 명제 자체를 살펴보자. 여기에는 논리적 혼란이 있다고 본다. 재래식 전력으로는 북한이 남한+주한미군보다 훨씬 약하므로 핵무기로 균형을 맞추려고 할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북핵은 체제보장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북핵이 "체제보장용에 불과하다"는 의미는 아닐 수 있다.

 

쉬운 예를 들겠다. 어떤 남자가 돈 많은 여자와 결혼했는데, 목적이 사랑도 있지만 돈도 있다고 하자. 그러면 "사랑이 결혼 이유다"가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이 이유의 하나이긴 하니까. 하지만 오해의 여지가 있다. 반면 "사랑만이 이유다"고 하면 의미가 분명해지지만 틀린 말이다.

 

"북핵은 체제보장용이다"도 이와 비슷하다고 본다. 체제보장이 한 이유이기는 하므로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오해의 여지가 있다. "북핵은 체제보장만이 목적이다"로 바꿔보자. 이 말에도 좌파들이 동의할까? 아마 쉽게 그러지 못할 것이다. 위에 말한 남자가 "사랑이 결혼 이유다"라는 반쪽 진실로 자기 기만을 할 수 있듯이, 대한민국 좌파들도 반쪽 진실로 자기 기만을 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된다. 체제보장용에 불과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아마 섞여 있을 것이다.

 

북한정권은 한 번도 적화통일의 꿈을 버린 적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 6.25 이후로 그런 시도를 하지 않은 건 힘이 약했고 마땅한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핵으로 힘의 우위를 점한 북한은 기회를 충분히 노릴 수 있다. 남한이 어떤 이유로 혼란에 빠졌을 때, 가령 부동산 가격 폭락으로 경제공황에 빠졌을 때 - 실제로 가계부채가 시한폭탄이라고들 한다 - 혹은 동아시아에 긴장이 고조되었을 때, 가령 남중국해에서 미중간 소규모 무력충돌이 발생했을 때 북한은 어떤 시도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런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 누가 북핵은 체제보장용에 불과하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가. 미사일에 꼬리표가 달린 것도 아니다. 아무리 선량한 의도를 가졌어도 핵은 그 존재 자체가 위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