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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idlemoon 2013. 7. 29. 02:52



부천에서 몇 편 보려고 했는데 결국 하나만 보게 됐다. 어제 토요일에 했던 <더 머신>이란
영화였는데, SF이고 평이 좋은 데다 누군가 <블레이드 러너>와 비교를 해서 기대를 했다.
하지만 완전 꽝이었다. IMDB 평점에서 평가자가 몇 십 명밖에 안 될 때는 믿지 말았어야
하는데... <블레이드 러너>? '택'도 없다. 다음 시간 영화도 하나 발권했었는데 그냥 포기
하고 집에 왔다. 제목(Cheap Thrill)처럼 싸구려 영화일 것 같았다.

음식으로 치자면 "입맛 버린" 느낌이어서 집에 와서 스필버그의 <A.I.>를 다시 찾아서 봤다.
옛날에 개봉 때 극장에서 보고 처음이었다. 초반 집에서의 시퀀스는 정말 숨을 제대로 못
쉬고 본 기억이 있다. 다시 볼 땐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좋았다. 그리고 끝 부분에
나오는 물에 잠긴 맨해튼은 다시 봐도 환상적이었다. 대형 화면에서 한 번 더 보고 싶다.
결말도 다른 사람들은 별로라고 했던 것 같은데, 난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And for
the first time in his life / he went to that place / where dreams are born."

이 영화의 평점이 얼마일까 궁금해서 봤더니 놀랍게도 6.0밖에 안 된다. 스필버그 (혹은
큐브릭) 영화 중 최고는 아니라는 걸 인정해도 이건 좀 의외다. 평론가는 혹시 다를까 해서
맨 위에 있는 로저 에버트 것을 보니 그도 별 (5개 만점) 3개밖에 주지 않았다. 인간이 아닌,
기계에 불과한 것이어서 도저히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단다.

이건 더 의외였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일 테고 이 영화 개봉 당시 나이도 적지 않았는데
(60 정도) 내가 보기엔 그 분야에 대해서 뭔가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유기물로 되어
있지 않지만 겉으로는 인간과 똑같이 행동하는 존재가 있다고 할 때, 그것이 인간과 같은
내면세계(의식, 혼)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아무도 증명할 수 없다. 현 단계의 컴퓨터가
진짜로 생각을 한다고 믿을 사람은 물론 아무도 없다. 그러나 우리 허벅지의 살덩이에
내면세계가 있다고 믿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없다. 허벅지 살과 뇌의 차이는 무엇인가.
둘 다 유기물이다. 물론 후자가 훨씬 복잡하고 기능도 다르다. 그러나 그런 논리라면 현
컴퓨터보다 훨씬 복잡하고 기능도 뛰어난 게 나오면 내면세계를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물론 나 자신을 포함해서 많은 과학자나 철학자들은 인간의 내면세계는 유기물인 것과
관계가 있을 거라고 짐작은 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짐작이나 직관에 불과하다.
어떤 근거가 없다.

몇 년 전에 읽은 한 논문에는, 겉으로 인간과 같이 행동하면서 의식이 없는 것(철학에서
흔히 "좀비"라고 불린다)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 문제는 확실한 결론이 난
것은 아니다. 뭐 결론이 난 철학적 문제가 있겠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