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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omat

idlemoon 2019. 3. 7. 00:58

예전엔 그냥 여자가 밤에 홀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구나 그 정도 생각했는데, 어느 책에서 그림 설명을 읽고 다시 보게 되었다. 우선, 장갑을 한쪽만 벗었다. 커피 외에 앞에 빈 접시가 하나 있다. 간단한 요기를 했다는 의미다. (automat은 과거에 자동판매기로 음식과 음료를 팔던 식당이다) 얼굴 화장(메이크업)을 좀 했다.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

 

화장한 거나 옷차림으로 봐서 사람(들)을 만나거나 만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퇴근 길에 커피 한잔하려고 들른 느낌은 아니다. '만남'의 장소는 이곳이 아니라 다른 곳이었을 것이다. 자동판매기로 음식을 파는 곳에서 저런 차림으로 만나기로 했을 것 같지 않고, 또 사람을 만나기로 했다면 혼자서 먼저 먹고 마시지 않을 것이다. (요즘 시대라면 휴대폰으로 연락했겠지만 이건 1927년 그림이다.) 아마 다른 곳에서의 그 만남이 뭔가 잘 풀리지 않았다는 짐작을 할 수 있다. 저녁 식사를 포함하는 약속이었을 가능성이 큰데 여자가 여기서 요기를 했다는 건 식사를 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커피잔을 내려다 보는 여자의 표정도 분명 밝지 않다.

 

음식 접시가 빈 것으로 봐서 꽤 오랜 시간 앉아 있었다. 한쪽 장갑을 벗지 않은 건 추위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 추운 계절인 건 분명하다 - 왼쪽 아래에 히터가 강조된 걸로 봐서 실내가 추울 것 같지 않다. 장갑을 안 벗은 건 말하자면 '심리적 움츠림'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리를 꼰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듯하다.

 

뒤쪽 창에 전등이 많이 비치는 것으로 봐서 실내가 상당히 밝은데 (크기도 하고) 그것 외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다. 여자 포함 실내가 비치거나 바깥 밤거리가 보여야 맞다. 여자가 고립된 분위기를 내기 위해 일부러 전부 검게 한 것 같다.

 

그럼 전등은 왜 그려 넣었느냐고 물을 수 있겠는데, 그 전등의 두 줄이 소실점을 향해 멀어지는 게 생각에 잠긴 여자의 표정과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나? 그리고 이건 상관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백열등이 상업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게 1920년대다. 그래서 당시로서는 전등이 있는 공간은 상당히 '모던'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