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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phenomenalism

idlemoon 2019. 12. 8. 00:18

정신(mind)과 육체(body)의 관계에 대한 철학 이론에 epiphenomenalism이란 것이 있다. 정신 현상은 육체의 물리적 현상에 '수반'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가령 내가 "팔을 들어올려야겠다"라고 생각하고 팔을 든다고 할 때 그 팔 움직임은 실제로는 뇌에서 발생한 어떤 신경 작용 때문이지, 팔을 들어야겠다는 나의 생각은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유를 위해 (자율)자동차가 생각을 한다고 하자. 그 차가 "출발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그 생각 때문에 엔진이 점화되어 바퀴가 구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물리적 원인에 의해 점화가 되었는데 그때 "출발"이라는 생각이 의식에 나타나는(수반되는) 것이다.

며칠 전에 한 과학 잡지의 글을 읽고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 경기에서 투수가 던진 공이 홈 플레이트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80~460ms이다. 그런데 타자가 배트를 휘두르는 데도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인체의 반응시간 - 결정을 하고 실제로 팔이 움직이기 시작할 때까지의 시간 - 이 최소 200ms이며, 팔을 실제로 움직이는 시간이 160~190ms이다.) 그래서 사실,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나자마자 결정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선수들은 공이 플레이트 근처에 왔을 때 결정을 한다고 생각한다.

의식적 결정 이전에 이미 생리적 과정이 시작된다는 (이걸 보여주는 실험은 수십 년 전부터 있었다) 게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epiphenomenalism은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실험은 그 이론을 강화시키는 건 분명하다. epiphenomenalism이 맞다면 '자유 의지'라는 건 물론 허상이 된다. ".. 때문에 ..한다" 혹은 ".. 때문에 ..했다"라는 우리의 생각은 대부분 착각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런 건 일종의 사후 합리화 - 혹은 스토리텔링 - 일 수 있다. 다만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사후 합리화'도 하나의 epiphenomenon이라는 것이다. 즉 내가 '하고 싶어서' 혹은 '내 의지에 따라'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