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브를 납작하게 하다"는 미국 등에서 코로나19 관련하여 자주 나오는 표현이다. 방역 조치들(protective measures)을 취하여 바이러스의 확산 속도를 보건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하로 낮추는 것을 의미한다. '방역 조치'는 사회적 거리 두기 외에 감염자 격리, 접촉자 추적, 유증상자의 마스크 착용, 손 씻기 등도 모두 포함할 수 있다.
이렇게 커브를 납작하게 한다는 건 바이러스를 완전히 차단하는 건 일단 포기했음을 의미한다. 최대한 납작하게 하는 게 아니라 '감당할 수준'까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프에서도 보듯이 커브가 납작해지면 길이는 길어진다. 그 길어진 기간 동안에 백신이 개발되든지 하면 커브 끝까지 안 갈 수 있겠지만 일단은 방역 정책의 목표를 완전 차단이 아니라 속도 감소에 두는 것이다.
커브를 납작하게 하는 것, 즉 속도를 줄이는 것 자체로는 총감염자 수가 줄어들지 않는다. 수는 같은데 더 긴 기간에 퍼져 있을 뿐이다. 위 그래프에서는 납작한 쪽(파란색)이 조금 작아보이는데 대략적으로 그린 것 같다. 두 그래프의 감염자수가 같다면 구체적으로 그 숫자는 얼마인가? 다른 말로 하면, 확산을 그냥 내버려 두었을 때 최대 얼마큼 감염이 되나? 여기서 집단면역(herd immunity)의 개념이 나온다. 집단면역은 충분히 많은 사람이 면역이 되어 실질적으로 그 사회에 전염병이 종식된 단계를 말한다. 이건 그 전염병의 전파력에 따라 다른데 코로나19의 경우 인구의 60% 정도라고 한다. 즉 인구의 60%가 감염되어야 끝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커브가 심하게 납작한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우리나라 보건당국의 목표는 커브를 납작하게 하는 게 아니라 완전 차단이었다.) 하루에 확진자 20명씩 - 어제 18일엔 18명이었다 - 늘어나 인구의 60%가 되려면 수천 년이 걸린다. 사람의 수명을 생각하면 60%가 감염될 일은 영원히 없겠다. 문제는 지금 엄청난 사회경제적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같은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는 계속 유지하기 힘들다. 통제를 풀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한두 달 후에 미국이나 유럽의 나라들이 "이 정도면 이제 통제를 풀어도 감당할 수 있겠다"고 판단을 하고 통제를 푼다고 하자. 그때 우리도 같은 수준으로 통제를 풀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 나라들은 집단면역까지는 아니라 해도 많은 사람이 면역이 되어 전파 속도가 느려졌을 텐데 우리는 그렇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 굉장히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는데 바로 그 때문에 그 나라는 가장 먼저 통제를 풀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나라는 비유하자면 온실 같은 상태이다. 매우 조심스럽다. 그리고 그건 우리가 방역을 너무 잘했기 때문이다. 지난 15일까지 우리 보건당국은 온갖 자원을 동원하여 그 방역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깊은 딜레마에 빠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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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지 않은 점들이 있는 것 같다. 내가 감염 최대치를 인구의 60%라고 했지만, 사실 저 그래프는 보통 최대를 인구 전체로 해서 그린다. 그리고 납작한(파란) 그래프는 보호조치들을 끝까지 유지할 때 그런 거고 실제로는 점점 통제를 풀 테니까 그래프 모양이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건 디테일이고 내 글의 요지는 그대로다. 많은 나라가 일단은 집단면역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 (커브를 누르는 건 그 자체로는 총감염자를 줄이는 게 아니라는 걸 상기하자)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나라는 딜레마에 놓인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