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merican Scholar 여름호에 실린 William Deresiewicz의 "Love on Campus"의
일부를 요약한 것입니다. http://www.theamericanscholar.org/
<The Squid and the Whale>, <One True Thing>, <Wonder Boys>,
<The LIfe of David Gale>, <Little Miss Sunshine> ...
근래에 미국영화에 등장하는 (인문학) 대학교수는 대개 성취감이 없고 좌절하며, 제자와
관계를 가지고, 가정에 불충실하며, 알콜 중독에 마약을 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학문에
충실하고 학생들에게 친절한 고풍스런 대학교수의 이미지와 아주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제자와 (주로 대학원생) 관계를 가지는 건 그런 영화에서 거의 예외가 없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남녀공학(coed)의 확산. 남녀공학은 19세기에도 있었으나 1960년대 후반에 본격화 되었다.
(남녀공학이 늘어났다는 건, 여학교 남학교 따로 있다가 합쳤다는 의미보다는, 남자만 받던
대학이 여자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대는 소수고 대부분은 남대였기 때문에 coed가
확산됨으로서 여대생이 늘어났다.)
그리고 같은 무렵에 소위 "성 혁명"이 일어났다. 이 이후로 미국문화는 점점 섹슈얼라이즈
되었다. 젊은 여성들을 많이 접하게 된 대학교수들과 그 학생들 사이에 그렇고 그런 관계가
있을 거라고 많은 미국인들은 상상하게 되었고, 그것을 통해 대리만족과 그런 욕망에 대한
비난을 동시에 행했다. ('평등'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고 있는 미국사회에서 대학교수는
은연 중에 질시의 대상이다.)
그러나 성희롱을 방지하려는 여성주의 운동은 대학 사회에서 가장 효과를 내고 있었고,
대학은 미국내의 다른 어떤 종류의 직장보다 더 자기 감시를 열심히 하는 곳이 되었다.
학부생일 경우는 특히 그렇다. 학생과 교수 사이에 성적 접촉이 전혀 없다는 말은 물론
아니지만 근래에 영화나 소설등에서 묘사되는 대학교수의 모습은 판타지다.
교수와 학생 사이에는 또 다른 차원의 '사랑'이 있다. 그건 성적 사랑도 아니며 가족적
사랑도 - 미국사회는 이 두 가지 사랑밖에 모른다 - 아니다.
사랑은 불꽃이다. 좋은 선생은 학생들로 하여금 그/그녀의 관심과 칭찬을 갈구하게
만들고, 그건 그 긴급성과 강도에 있어서 에로틱하다. 일부 학생들은 이런 "지진(地震)"
같은 감정을 성적 사랑으로 착각하며, 경험이 부족하거나 어리석은 선생들은 그걸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수는 가르침이란 그런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일
뿐 아니라 그 욕망을 올바른 대상 - 학문 - 으로 유도하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시인
예이츠는 말했다: 가르침은 양동이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불을 붙이는 것이다.
좋은 글이긴 했지만 웬지 모범답안(?)을 읽은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