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노조가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제작거부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좀 모호하다.
청와대의 보도 개입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 구체적 사례가 별로 부각되지 않고 있다. 가끔
언급되는 것으로 국정원 관련된 것과 "해경 비판을 자제해 달라"는 것이 있는데, 국정원 건은
시일이 좀 지난 것이고, 해경 비판 건은 글쎄, 그런 지시/부탁을 한 게 부적절하다고는 할 수
있지만 사장 퇴진을 요구할 정도까지 되는 것일까.
김시곤 전 보도국장은 "세월호 참사에 관한한 우리 보도가 결코 뒤지지 않고 비교적 잘한 보도
라고 자평한 적 있다"고 말한다. 이건 청와대의 '외압'이 실상 별로 문제가 아니었다는 의미
이지 않은가? 국정원 건에 대해서도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장의 개입이 다른 부분에 거의
없었는데. 국정원 수사에는 일부 있었다. 순서를 좀 내리라던가, 이런 주문이 있었지." 그런
'주문'이 KBS 초유의 사태를 불러올 만큼 심각한 것인가?
그동안 쌓여온 게 터져 나온 거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구체적 계기가 뚜렷하지 않다. 김 전
국장의 '폭로'가 계기인 것처럼 말하는 기사도 있지만 위에 인용했듯이 내용이 크게 심각해
보이지 않고, 그리고 그런 걸 다른 직원들이 모르고 있었던 것도 아닐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사건의 핵심은 김 전 국장의 해임인 듯하다(형식은 사임이지만 실제
로는 해임이다). 그 원인은 알다시피 세월호 사건을 교통사고에 비교한 그의 발언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해임에는 청와대의 압력이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길사장의 가장 큰 잘못이다. 사석에서 한 발언 하나 때문에 해임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이번의 사태도 이것의 부당함에서 촉발된 것이라고 본다.
다만 문제는 아무도 그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길사장의 퇴진 요구 자체에는 동조할 수
있지만, 그 핵심을 (내 판단이 맞다면) 말하지 않는 건 비겁한 것이다.
PS.
김 전 국장의 발언 자체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교통사고와 비교한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나라에서 한 해 교통사고에 의한 사망자 수가 5000명이 넘는다. 그중에 아무 잘못 없이
(그냥 승객으로서 혹은 그냥 길 가다가)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지만
절반만 잡아도 세월호 희생자보다 훨씬 많다. 그러니 "교통사고 사망자 수에 비하면 많은 게
아니다"라는 말 자체는 틀렸다고 할 수 없다. (세월호 침몰 같은 사건은 매우 드물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두 사건의 성격이 다르다는 주장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반적인
교통사고는 개인의 잘못이 큰데, 세월호 참사는 개인들의 잘못도 있지만 관리 당국의 태만이나
부패도 큰 요소라는 것이다.
그러나 교통 당국이라고 완벽할까? 우리나라의 도로상황이나 신호체계, 안전시설, 교통정책
등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부패는 없을까? 아마 해운 당국보다는
문제가 덜할지 모르지만 정도의 문제일 뿐일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어쨌든 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를 줄이는 것이다. 논의를 간단하게 하기
위해 해운사고에서는 정부의 책임이 50%이고 교통사고는 100% 개인 책임이라고 하자. 그래서
전자의 경우에는 정부를 비판해야 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자. 그러나
정부를 비난하고 안 하고가 그렇게 중요한가? 개인들을 상대로 교육/캠페인을 해서 차후의
교통사고를 줄이는 것은 정부를 비판해서 해운사고를 줄이는 것과 똑같이 좋은 일 아닌가?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정부 비판은 '섹시'한 것이지만 스스로를 개조하는 일은 별로
신 나는 게 아닌 것 같다.
세월호 사건과 관련하여 정부를 비판하면 안 된다는 말은 당연히 아니다(지나치다는 느낌이
있기는 하지만). 교통사고에 '정부 책임'의 요소가 없다고(적다고) 해서 관심을 안 가지면 안
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교통사고 희생자 수는 아직도 OECD 평균의 2배가 넘는다. 정부를
비난하는 틈틈이 자신의 과속에도 주의를 기울이면 어떨까. 우리 모두가 과속하지 않고 교통
법규를 잘 지키고 조심 운전한다면 매년 세월호 희생자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을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