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산 2021

idlemoon 2021. 10. 14. 01:42

온라인 예매 오픈이 9월 30일 오후 2시였다. 예매할 영화 10편의 순서를 정해놓고 시작하자마자 들어갔는데 1번 영화의 좌석이 절반도 안 남아 있었다. 1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각이었다. 이후 2~5번의 영화는 이미 매진이었다. 결국 처음 정한 10편 중 5편 정도만 예매에 성공하고 나머지 스케줄은 원래 리스트에 없던 것들로 채웠다.

 

그런데 내가 첫 번째로 뽑은 영화는 예매 성공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이다) 그 영화를 보지 못했다! 남포동의 롯데시네마인데 센텀시티의 롯데인 줄 알았던 것이다. 난 올해 남포동에서는 아예 안 하는 줄 알고 있었다. 티켓에 '롯데시네마 대영'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그 '대영'이란 글자를 무심히 넘긴 것이다. 선입견이란 게 무섭다는 생각을 새삼 했다. 나이가 들수록 심해지는 것 같다.

 

<Prayers for the Stolen>

멕시코의 시골 마을에서 마약 카르텔과 부패한 공권력에 억압 당하는 사람들 이야기. 나로선 그런 정치적인 면보다 멕시코 사람들의 생활상과 10대인 여자 주인공들의 충실한 묘사가 좋았다. 감독이 여성이다.

 

<Marx Can Wait>

마르코 벨로치오라는 이탈리아 감독(꽤 유명한 것 같은데 내가 본 게 없다)이 자살한 자신의 쌍둥이 형제 카밀로 벨로치오를 회고하는 다큐멘터리다. 상당히 감동적이다. 카밀로가 자살한 이유는 당시의 연애 문제도 있었던 것 같지만 근본적인 것은 자신이 다른 형제들에 비해 열등하다는 의식 때문이었다. (특히 마르코는 스타 감독이었다.) 그 사건이 발생한 건 그들이 29세이던 1968년이었는데, 그때는 알다시피 신좌파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이다. 마르코도 당시에 정치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제목 "Marx Can Wait"는 카밀로가 그에게 해준 말이란다. 사회를 바꾸기 전에 나 혹은 가족의 문제가 먼저라는 뜻이다. 이재명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다.

 

<Crossing′s End>

대만 다큐멘터리. 다리 위에서 남녀가 약간의 말다툼을 하다가 여자가 다리 밑으로 뛰어내려 죽는다. 남자는 처음엔 무죄로 풀려나지만 목격자가 나중에 말을 바꾸는 바람에 그뿐 아니라 그를 (술 마셨기 때문에) 다리에 데려다 준 친구까지 살인의 누명을 쓴다. 영화는 그들의 구명 운동을 추적한다. 사건도 사건이지만, 밖에 남겨진 가족들의 묘사도 좋다.

 

<Vortex>

가스파 노에의 영화를 (둘밖에 못 보긴 했지만)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내키지 않았지만 다른 게 없어서 봤다. 역시 실망이었다. 젊은 사람이 보면 어떤 울림이 있을지 모르지만 노년이 된 나로서는 이런 영화를 왜 만드나 싶었다. 그래서 어쨌다는 건데?

 

<The Blind Man Who Did Not Want to See Titanic>

감독이 영상 인사에서 (코로나 때문에 다른 영화들도 영상 메시지로 무대 인사를 대신했다) 이런 영화를 본 적 없을 거라고 말했을 때 난 내심 "좀 건방진 거 아냐?" 생각했다. 하지만 보니까 완전 그 말이 맞았다. 영화는 시각장애자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주인공 얼굴 외에 배경과 기타 사물들은 모두 매우 흐릿하다. (문자 그대로 시각장애자의 POV라면 얼굴도 안 나와야 맞겠지만 그러면 감정 표현이 너무 어려울 것이다. 얼굴만 객관적 시점, 나머지는 주관적 시점, 그렇게 간주할 수 있겠다.) 이 설명만 들으면 지루한 영화일 것 같을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주인공이 농담을 잘하고, 종종 서스펜스도 있다.

 

<Huda′s Salon>

(나로선) 보기 드문 팔레스타인 배경의 영화.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정보원을 포섭하는 이스라엘 첩보기관과 이스라엘의 점령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조직 사이에서 (영화는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는다) 위기에 처한 한 여자의 이야기. 실화에 바탕을 두었다고 하는데 현실과 다른 점들이 뻔히 보인다. 그래도 각본이 매우 치밀하다. 늘 할리우드 스릴러만 보다가 봐서 그런지 신선했다. IMDB의 한 평자는 자기가 아랍어를 한다고 말하면서 대사들의 수준이 매우 낮다고 주장한다. 어쨌든 난 재미있게 보았다.

 

<Feathers>

배경은 이집트인 것 같다. 지독히 가부장적인 남편이 어느날 닭으로 변한다... 시작은 재밌는데 감독이 말하는 "블랙코미디"가 어디 있는지 잘 모르겠다. 못 만든 영화라는 뜻은 아니다. 이슬람 국가에 사는 가난한 여성의 삶이 절절하게 다가왔다. 감독이 여자가 아닌 게 아쉽다.

 

10편 예매했는데 술자리 때문에 하나 취소하고, 위에 말했듯이 극장 잘못 알아서 하나 취소하고, 그리고 돌아오는 날 피곤해서 마지막 것 취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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