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산 2018 (2)

idlemoon 2018. 10. 25. 19:57

나는 약신이 아니다

이것도 실화를 배경으로 한다. 조그만 약방을 꾸려가던 주인공이 어느 날 만성 골수백혈병 치료제를 인도에서 밀수입한다. 시판되고 있는 스위스 정품과 가격 차이가 매우 커 쉽게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처음엔 돈이 목적이었지만 나중엔 싼 가격으로 팔아서 그 병으로 고생하는 서민들의 영웅, 즉 '약신(藥神)'이 된다. (미국 영화 <Dallas Buyers Club>을 생각나게 한다.) 검열이 심한 중국에서 저예산 예술영화라면 몰라도, 대중영화가 어떻게 이런 스토리일 수 있지?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끝에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는 걸로 마무리된다. 실제로도 사건이 대략 그런 식으로 진행된 모양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영화화 되지 않았을 거다.) 줄거리는 좀 만화 같지만 만듦새는 좋다. 인물들도 개성이 있다. 영어 제목이 왜 dying to survive가 된 건지 잘 모르겠다. 살기 위해 죽는다?

 

한국 단편 경쟁3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 요즘 젊은 애들이 김장을 하나?

<바다 저 편에> 잤나, 기억이 전혀 안 난다.ㅠㅠ

<위태로워야 했던 건 오직 우리뿐> 끝이 좀 억지스럽다. 시골길에 차가 얼마나 빨리 달리길래 세워 놓은 카메라를 보고 멈추거나 피할 시간이 없나. 더구나 카메라를 향해 사람이 서 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띌 것이다.

 

Border

제목이 '경계(border)'고 주인공이 세관 직원이라고 해서 유럽의 이민자 문제를 다루는 줄 알았다. 그런데 '경계'는 그런 뜻이 아니라 인간과 다른 종(種) 사이의 경계를 의미하는 거였다. 주인공은 냄새 맡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그보다 '육감'이 더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벌레를 아주 맛있게 먹는다. 외모도 인간 기준으로 매우 특이하다. 그런 주인공이 같은 변종의 남자를 - 수컷이라고 해야 하나 - 만나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컨셉은 상당히 흥미롭다. 근데 뒤에 가서는 상투적인 액션 영화처럼 되는 게 조금 아쉽다.

 

Leto

한국계 러시아 록가수 빅토르 최 이야기라고 하지만, 사실 그를 도와 준 선배 가수 마이크 나우멘코가 더 중심 인물인 것 같다. 'Leto'(여름이라는 뜻)도 마이크의 노래다. 음악 영화이지만 마이크의 아내 나타샤를 포함한 세 명의 삼각관계도 한 축을 이룬다. 스타일 면에서 조금 새롭게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예로, 뮤지컬 영화 같은 장면들이 있다 - 일반인이 거리에서 노래 부르는 그런 것. (록가수 영화와 뮤지컬 영화는 음악 영화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많이 다르다.) 가끔 모션 그래픽이 화면에 덧씌워져 음악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들이 덜 지루하게 해준다. 또 가끔 한 캐릭터가 나와서 영화 자체에 대해 코멘트한다. 예를 들어, "이 장면은 사실이 아닙니다"라거나 빅토르가 처음 등장할 때 "전혀 안 닮았다"라고 말한다.

 

Happy as Lazzaro

이탈리아의 한 시골 마을. 머리가 좀 모자라지만 매우 착한 청년 라짜로가 이웃들과 함께 소작농을 하고 있다. 주인집 아들의 휴대폰 같은 것만 제외하면 시대 배경이 19세기라고 해도 될 만하다. 그런데 어느 날 경찰이 들이닥치면서 마을 사람들이 오랫동안 고립되어 살아왔다는 게 드러난다. "어 영화가 재밌어지네" 했는데 실은 별로 그렇지 않았다. 요약해 말하자면 소작농 하던 사람들이 현대 도시에서는 빈민층이 된다, 뭐 그런 거다. 틀린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지만 너무 도식적인 느낌을 준다. 마지막에 라짜로가 은행에서 폭행을 당하는 것도 노골적이다.

 

Minding the Gap

미국의 낙후된 지역에 사는 중국계 청년이 친구들과 자신을 카메라에 담은 다큐멘터리. 저소득층이라 부모 이혼, 가정 폭력 등 다들 환경이 좋지 않았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친했고 스케이트보드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스케이트보드는 그들에게 정서적 탈출구였다. (감독이 어릴 때 자신이나 친구를 찍은 클립들도 영화에 포함되어 있다.) 이 다큐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건 보드 타는 걸 따라가면서 찍은 숏들이다. 감독이 자신도 보드를 타고 가면서 찍은 것 같은데 매우 유연하다. 알고 보니 현재 촬영감독으로 일하고 있단다. 다큐 내용도 좋다. 감독 어머니와의 인터뷰는 꽤 감동적이다. 친구들의 모습/대화도 친한 사람만이 찍을 수 있는 그런 것들이다. 제목은 '갭을 조심하기'라는 뜻인 것 같다. 보드 탈 때 길에 틈이 있으면 걸려서 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A Twelve-Year Night

1973년 우루과이에서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게릴라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12년간 옥살이한 세 사람의 이야기다. 그중 한 명은 나중에 우루과이 대통령이 되었단다. 독방에 수감될 뿐 아니라, 말하는 것도 금지되었다는 말을 처음에 들어서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지? 생각했었다. 영화를 보니 독방은 맞는데 말을 전혀 못한 건 아니었다. 한글 제목 '12년의 밤'은 잘못이다. '12년간의 밤' 혹은 '12년 동안의 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Roma  (0) 2018.12.21
Der Himmel über Berlin  (0) 2018.11.28
부산 2018 (1)  (0) 2018.10.20
거인과 완구  (0) 2018.06.01
전주 2018  (0) 2018.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