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2)

idlemoon 2019. 7. 1. 12:10

전에 올린 나의 촌평에 조금 거친(?) 반응이 있는 것 같아서 약간 부언하려고 한다. 전체적인 분석은 여전히 내키지 않고, '기생충'이라는 제목의 의미에 대해서만 생각해 볼 것이다.

영화에서 기택(송강호) 가족이 기생충과 비슷하다는 해석에는 모두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지하실에 몰래 사는 경우는 확실히 그렇다고 할 수 있겠는데, 박사장집에서 일할 때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는 애매하다. 처음 고용이 될 때는 물론 비리가 있었지만,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정당하게 받는데도 기생충이라고 할 수 있나? 기택도 일반적인 운전사 일을 하고, 기우도 보통의 과외 선생을 하고, 충숙도 보통의 가정부 일을 한다. 그런 사람들을 기생충이라고 한다면 대한민국에서 부잣집 과외를 하거나 가정부 하는 사람은 모두 기생충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국어사전을 보면 '기생하다'는 "스스로 생활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의지하여 생활하다"이다. 박사장이 해고하면 바로 실직 상태로 돌아간다는 (영화의 전제다) 점에서 '다른 사람에게 의지'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렇다면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살아가는 직장인은 모두 기생충인가? 이건 분명 심하다. 박사장집이 일반적인 소규모 사업장과 다른 점은 있다. 후자에서는 조직 내에 각자 맡은 일이 있다. 가령 고객을 상대한다든지, 회계를 담당한다든지, 재고를 관리한다든지 한다. 그러나 전자에서는 주인/고용주를 직접 상대해야 한다. 그들의 비위를 늘 맞춰야 한다. 그래서 이 경우에 '기생한다'는 말을 쓸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 해도 의문은 있다. 운전수는 운전이라는 업무가 있다. 사장의 비위를 맞추는 게 일은 아니다. 가정부도 청소나 요리라는 업무가 있다. 안주인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고용주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건 소규모 사업장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어쨌든 부잣집에서 거의 하인처럼 일하는 건 '기생'하는 범주에 든다고 인정하고 가겠다.)

문제는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다. 감독이 이전에 만든 영화를 생각해도 그렇고, 온갖 평자들의 평을 봐도 그렇다. 우리 사회의 계층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정확히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건가? "우리 사회의 빈곤층은 부유층에 기생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이건 대단히 무리한 명제다. 우리나라의 빈곤층 중에 영화에서처럼 부잣집에서 하인처럼 일하는 사람의 비중은 매우 낮다. 전체 계층과 계층 사이의 관계로 보자면 오히려 그 반대가 맞다. (마르크시즘에 따르면) 자본가가 프롤레타리아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 아니었나? 재벌 2세가 아무 일도 안 하면서 풍족하게 사는 거야 말로 기생충 아닌가?

1. A 가족과 B 가족의 계층적 갈등을 묘사하고 있다.
2. A 가족은 B 가족에 기생한다.
3. 1에서 말한 갈등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갈등의 예 혹은 축소판이다.
4. 2에서 말한 기생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기생적 삶의 예 혹은 축소판이다.

1에서 3까지는 인정할 수 있다 (3에 관해서는 메시지가 앞서 있다고 느끼지만 어쨌든). 그러나 4는 위에서 말했듯이 인정할 수 없다. '기생충'이라는 단어는 비참함, 굴욕 등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빈곤하게 사는 사람들도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개념의 혼란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혹시 "빈곤층은 부유층에 기생하고 있다"가 아니라 "빈곤층은 부유층에 기생해야 한다"는 게 메시지인가? 조금 다르게 말하면, 사회가 불공정하므로 빈곤층은 기회만 있으면 부유층을 대상으로 도둑질을 해야 한다는 것인가? 아닐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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