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워낭소리

idlemoon 2009. 2. 24. 02:58

다큐멘터리에서 "연출"은 여러가지 형태로 있을 수 있다. 최대한 연출이 배제되는 것을
개인적으로 선호하기는 하지만 완전히 배제된 다큐멘터리는 있기 힘들 것이다. 문제는
어떤 형태의, 혹은 어떤 수준의 연출이 허용 되는가 하는 것일 테다. 난 허용이 되는 것
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본다. 하나는 연출임을 관객이 알 수 있는 것, 또 하나는
연출인 줄 몰랐다가 나중에 알았을 때 별로 배신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

전자의 예로서는, "재현"임을 분명히 밝히거나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았더라도 앞뒤 상황
이나 관행으로 봐서 연출임을 대개의 관객이 알 수 있는 그런 경우를 들 수 있겠다. 후자의
예로서는, 인터뷰의 중간을 잘라내고 그냥 붙이면 영상이 튀니까 그 사이에 인서트 - 듣고
있는 사람의 표정 같은 것 - 을 나중에 찍어서 편집해 넣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전자의 예에서는 관객이 연출임을 아니까 문제가 될 게 없다. 물론 "저게 다큐멘터리냐"
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다큐와 픽션이 혼합된 영화도 얼마든지 좋은 영화가
될 수 있으므로 제작자가 "이건 그래도 다큐멘터리다"라고 우기지만 않으면 문제 될 게
없을 것이다.

후자의 예에서도, 나중에 편집해 넣은 것이라는 사실을 관객이 깨달았다고 해도 그걸
가지고 꼬투리를 잡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질문한 사람(interviewer)이 그냥 가만히
듣고 있는 모습 정도라면 말이다.

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라, 상대(interviewee)의 말에 감동 받아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편집해 넣었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엔 관객이 그걸 깨달으면 속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겠는가. 관객 자신도 그 눈물 때문에 따라서 감동했다면 특히 그럴 것이다. (영화
<브로드캐스트 뉴스>를 보면 바로 그런 문제를 다룬 장면이 나온다.)

<워낭소리>에도 그와 비슷한 경우들이 있는 것 같다. 할머니의 코멘트가 영상과 동시
(싱크)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의심되는 경우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게 사소한 대사가 아니라, 많은 관객이 웃고 감동한 그런 대사다. 나중에 녹음해 넣은
거라는 걸 알고 나서도 그들이 마찬가지로 웃고 감동할까.

후시 녹음임을 알면서도 웃는 것이 가능하긴 하다. 촬영된 동영상을 보며 할머니가 멘트를
(일부 TV 쇼 프로그램들에서 보듯) 재치 있게 날리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이루어진 대화와 나중의 코멘트는 분명 다른 것이다. <워낭소리>는 동시 녹음인
것처럼 편집되어 있다.

유머가 아주 지적이었으면 연출임을 알고서도 "용서"를 해줄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워낭소리>의 그것은 단선적인 것이었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Slumdong  (2) 2009.04.01
English Patient  (5) 2009.03.28
The Virgin Spring (2)  (0) 2008.12.14
The Virgin Spring  (0) 2008.12.14
추격자 (The Times)  (0) 2008.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