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1977)로 잘 알려진 오바야시 노부히코의 2017년 영화. 영화가 좀 어렵지만 그냥 분위기만으로도 좋다. IMDB 사이트에서 본 표현을 빌리자면 이 영화는 "전쟁의 혼돈에 포위 당한 젊음의 순수함"을 담았다. 상당 부분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 - 세부적인 건 아니더라도 감정적인 면에서 - 인 듯하다. 영화 마지막에 늙은 주인공이 나오는데 배경에 '오바야시'라는 이름이 적힌 감독 의자가 한 번 보인다.
제목은 꽃바구니라는 뜻이고, 단 카즈오라는 일본 작가의 소설 제목이기도 하다. (카즈오는 다자이 오사무의 친구였다고 하며, 오사무는 영화 속에서 남자 주인공들의 선생으로 나온다.) 영화는 그 소설 내용 그대로는 아니더라도 영감을 받은 것이겠다. 영화에는 카즈오의 시 하나가 자주 인용된다.
ゆきずりの
まぼろしの
花のうたげ
くるしくも
たふとしや
영어 자막: An illusion? / I pass flowers in bloom. / It's as agonizing as it's honorable.
영화에는 젊은 애들이 징집되어 전쟁터로 줄지어 가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는데, 이 시의 화자는 그렇게 죽으러 가는 병사의 입장이 아닐까 한다. 지나가는데 어, 환각인가? 꽃들이 활짝 피어있다. 그건 영광스로운(참전이 영광이니까?) 만큼이나 고통스럽다.
영화 마지막에, 크레딧 다 나오고 난 다음에도 그의 시구절이 하나 나온다.
もがり笛
幾夜
もがらせ
花二逢はん
The breeze of a mourning winter / Night after night / Then the flowers come
울타리를 스치는 겨울 바람 소리가 / 며칠 밤 계속되었다 / 그러고는 꽃들이 왔다.
모가리(もがり)는 직접적으로는 대나무 같은 걸로 만든 울타리를 뜻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동음이어로 "옛날에, 귀인의 시체를 매장하기 전에 관에 넣어서 잠시 동안 빈소에 안치하던 의식"을 의미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위 스틸 속 여자는 '미나'라는 캐릭터로서 병에 걸려 시한부 삶을 산다. 그녀는 1941년 12월 7일에 죽는데, 일본이 진주만 공습을 하면서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날이다. 그래서 그녀는 일본의 도덕성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스틸의 남자는 이 영화의 주인공 토시히코인데, 이어지는 장면에서 미나에게 키스하려고 할 때 그녀가 거절한다. 처음에는 둘이 친척 관계라서 그런 줄 알았는데 나중에 밝혀지는 걸 보면 미나는 토시히코의 이모의 죽은 (만주에서 죽었다) 남편의 여동생이다. 그래서 친척 관계는 이유가 아닌 것 같다. 아마 자신이 곧 죽을 것이기 때문에 사랑하지 말라는 뜻인 듯하다. 도덕성을 잃은 조국을 사랑하지 말라는 뜻도 될까. 토시히코는 평생 독신으로 산다. 그의 미나에 대한 감정은 이 마지막 장면에서야 (앞에 나온 장면이지만 끝에 플래시백으로도 나온다) 분명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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