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기대를 안 했고 그래서 볼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평들이 상당히 좋았다. 씨네21 전문가 별점 8.3, IMDB 8.3, Rotten Tomatoes 8.2 등. 그래서 생각보다 괜찮나... 하면서 찾아 봤다.
그러나 '역시나'였다. 다른 건 차치하고, 스토리의 핵심인 '아이의 탄생'에 대해 얘기하겠다. 그게 왜 '기적'인가? 레플리컨트는 기술적으로 - 생물학적으로 - 아이를 낳기 힘든데, 그게 성공해서 기적이라는 건가. 비유하자면, 무인우주선을 화성에 착륙시키는 게 매우 어려운데 그게 성공해서 '기적'이라고 말할 때와 같은 것인가?
그러나 이 영화에서 '기적'은 단순히 그런 기술적 성공을 의미하는 게 아닌 건 분명하다. 그럼 뭔가?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어떤 초자연적인 현상이라는 건가? 그런 의미라면 앞으로 2세를 낳기 위해서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계속 의존해야 한다. 기적이 계속 일어날 걸 어떻게 아나? 기적을 계속 베풀어주는 하느님을 전제해야만 이해가 된다.
'만들어진' 게 아니라 '태어난' 것이라는 데 영화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즉 '생명의 태어남' 그 자체를 하나의 기적으로 간주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벌레들도 새끼를 낳는다. 레플리컨드들 사이에서 2세가 태어난 게 기적이라면 박테리아가 증식하는 것도 기적이다. 그래서 역시 여기서 '태어남'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의미가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 특별히 선택되었다는 의미로 봐야만 이해가 된다.
주인공의 대사 "태어난 것에는 혼(soul)이 있을지 모른다"는 것에서도 그게 드러난다. 벌레에도 혼이 있다는 의미는 아닐 테니, 여기서 '태어남'은 인간 혹은 그 비슷한 것에만 해당되는 말이다. 하느님이 인간이 태어날 때 혼을 부여했듯이 레플리컨트 2세에도 혼을 부여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기적'의 의미를 난 이렇게 기독교적으로밖에 해석하지 못하겠다.
크리스챤이 아닌 나로서는 '태어남'에 아무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생명에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라,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만들어지는' 방식으로도 생명이 혹은 '혼'이 생겨날 수 있다는 말이다. 데커드나 레이첼 같은 레플리컨트들이 모든 면에서 인간과 똑같이 행동하고, 신체의 화학적 구성도 똑같다고 했을 때는 그들에게도 혼이 - 자의식이 -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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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보니 내가 종교적인 영화는 무조건 싫어하는 것 같은데 그건 아니다. 가령 예수의 삶을 소재로 했다고 해도 인간의 보편적인 문제를 다뤘다면 충분히 감동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마치 '예수'라는 단어만으로 감동하라고 요구하는 것 같다. 각론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