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 욕하기도 이제 지겹지만, 하도 평들이 좋아서 싫어한 사람도 있다는 걸 밝히고
싶다. 조마조마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 그걸 계속 끌고 가는 것. 뭐 상업영화가 그런 거라고 하
면 할 말 없지만, 호평이 과다하다. 마음 졸이는 상황이라는 걸 떠나 대사 자체만 보면 아무런
내용이 없지 않은가. 길이가 짧으면 또 모르겠으나 이 장면만 10분이 넘는다.
이 장면도 그렇다. 나치 장교가 나타나기 전까지 합치면 20분이 넘을 거다. 이 나치 장교가
등장하는 것도 매우 작위적이다. 마치 숨어있다가 나오듯 나타난다. 총격전의 결과도 개연성
이 없다. 한쪽은 미리 준비하고 있고 다른 쪽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결말이
되나. 처음 한둘 총 맞을 때까지도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리둥절하는 게 오히려 상식적일 것
같다. 저쪽 테이블의 독일군들에게는 이쪽이 모두 자기들보다 높은 장교라는 걸 상기하자.
독일군복 입은 연합군 스파이는 현실에는 자주 있는 게 아니다.
상대방의 이름을 반복적으로 물어보는 건 실례 아닌가? 실례를 해도 되는 상황이라면, 어디
데리고 가서 확실히 취조를 하든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관객을 조마조마하게 하
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등산하다가 다쳤다는 여자의 말에 웃는 것도 어린애 같다.
나이 50은 되어 보이는, 산전수전 다 겪은 군인이 그런 얘기에 배꼽을 잡나. 그냥 한 번 코
웃음으로 끝날 정도 아닌가.
물론 마지막의 변절을 생각하면 이 군인에게 엉뚱한 면이 있음이 짐작되긴 한다. 위 첫 사진의
파이프가 과장되게 생긴 것도 (한 평론에 의하면 성적 콤플렉스를 나타낸단다)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그렇다 해도 그의 캐릭터에 일관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나치(와의 전쟁)영화와 판타지를 결합하여 상당히 독특한 영화를 만들어 낸 건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 영화를 보고 "kosher porn"이란 말을 했다고 한다. 코셔는 "유태교의
율법에 맞는" 혹은 그러한 음식이란 뜻이다. 그래서 "코셔 포르노"는 봐도/만들어도 좋은, 욕
먹지 않는 포르노라는 의미다. 미군 게릴라들이 독일군을 상대로 잔인한 짓들을 해도, 마지막
극장에서 많은 민간인들을 죽여도 별 거부감 없이 보니 말이다.
타란티노의 영화가 대개 그렇듯 인간과 역사에 대한 통찰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냥 하나의
"영화에 대한 영화" 혹은 그의 다른 영화 제목처럼 "펄프 픽션"으로 봐야 할 테다. 싸구려로
만들었으면 별 생각없이 봤을지도 모르겠다. 돈 많이 들여 고급스럽게 만든 데다가 칭찬까지
많이 하니 반발감이 생기는 것이다. <펄프 픽션>은 펄프 픽션이지만 뛰어난 영화였다고 생각
한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Big Sleep (1) | 2010.03.18 |
---|---|
Avatar (2) | 2010.02.27 |
Hiroshima Mon Amour (0) | 2009.12.10 |
Moon (2) | 2009.12.07 |
파주 (0) | 2009.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