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色,戒

idlemoon 2007. 11. 15. 01:32

과거 회상으로 들어간 초반에 좀 지루했으나 그 뒤로는 영화가 2시간 40분임에도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뛰어난 연출력의 결과라 하겠다. 이런 영화에 흠을 잡는 건 쪼잔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두 마디 하자면, 우선 여자의 동기가 애매하다. 물론 애국심에서
시작한 일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이건 목숨을 건 일이고 상대는 정보조직이다. 그리고 싫은
남자와 (양조위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전某 장군 같은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은가)
잠자리도 같이 해야 한다. 철저한 정신무장과 훈련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여자는 너무 쉽게
일에 뛰어든다. 게다가 그 일을 너무 잘 한다. 양조위랑 레스토랑에서 처음 식사하며 상대를
유혹하는 - 혹은 유혹당하는 듯한 - 모습이 너무나 훌륭하다. 아마추어로 무대에 한두 번 선
실력으로 그렇게 할 수 있나. 물론 정말로 상대의 매력에 빠진 거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런
해석에도 문제가 있다. 적진에 뛰어 든 스파이가 처음부터 상대의 매력에 푹 빠진다는 게 말이
되는가. (우리나라 80년대에 운동권 여대생이 안기부 부장을 상대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침투'의 목적도 의문이다. 암살이 목적이라면 굳이 그렇게 여자가 접근해야 하나. (그리고
접근했으면 그냥 자신이 '처치'하면 되지 않나. 연약한 여자라서 못 한다는 건가. 아님 자신이
너무 위험해지기 때문에?) 정보를 캐내는 게 목적이라고 하기도 힘들다. 그런 장면이 없기
때문이다. 후반에 한 번 무기 정보에 대한 얘기가 있긴 하지만 그거론 부족하다.

결말도 좀 아쉽다. 그 결말이 시사하는 바가 뭔가. 체제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건가. 혹은 일제에 당한 그 역사의 비극을 표현하고 싶은 건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이
영화에는 정치적인 것에 대한 언급이 너무 없다. 이 영화는 정치얘기라기 보다는 사랑얘기다.
해피엔딩이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사랑 얘기의 마무리로선 뭔가 미진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건 '흠'이라고 하긴 좀 그러나, 매우 잘 만든 영화이긴 하지만 뭔가 새로운,
신선한 맛은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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