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이 예외였음을 확인시키는 영화. 내가 보기에 가장 큰 문제는 마더의 캐릭터.
보통의 엄마라도 아들이 살인 누명을 쓰면 거의 미칠 것이다. 근데 이 여자는 처음부터 그런다.
이런 류의 영화에선 (뭐 감독은 장르 영화를 비틀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미쳐가는 엄마와 함께
관객이 따라서 안타까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근데 처음부터 미쳐 있으면 관객은 어떡하라는
건가.
그런 캐릭터로 설정한 이유가 마지막 1/4쯤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그때부터 좀 재미있어진다.
그러나 너무 늦다.
그리고 사실, 그 장면의 설득력에도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할아버지를 왜 죽이나? 그러면
아들이 풀려나나? 죽임으로서 아들이 풀려나는 상황이라면, 처음부터 미친 마더보다 처음엔
보통이었던 엄마가 더 나을 수 있다. 미친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는 건 개연성은 높지만 별로
시사하는 바가 없다. 그러나 보통 엄마가 그런 행동을 한다면 도덕적 딜렘마가 훨씬 강하게
다가 올 것이다.
죽임으로서 아들이 풀려나는 상황이 아니므로 (물론 결과적으론 다른 엉뚱한 사람이 잡혀
와서 아들이 풀려나긴 했지만 마더가 그런 걸 예측했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다른 해석은 그냥 마더가 '듣고 싶지 않았다'는 것. '그런 끔찍한 거짓말을 하다니,
넌 죽어야 해!' 뭐 그런 거.
그러나 그런 해석도 만만치 않다. 종태를 만나서 마더는 심하게 갈등하는 모습을 보인다.
할아버지의 말을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하는 마더라면 종태 앞에서 도덕적 갈등을 안
하지 않을까? 잠재의식적으론 갈등이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말이다. 오히려
자신의 믿음이 옳았고 할아버지는 틀렸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아들이 유독 자신의 범행 부분만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도 참 편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