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 이야기. 허구적인 부분이 많다. 대부분의 전기영화처럼 네루다를 영웅으로 그려내는 영화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시작부터 내레이션이 그에 대해 매우 냉소적이었다. "그는 20년 전에 쓴, 이 촌스런 시를 아직도 낭독한다... 맨바닥에 자는 게 어떤 건지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이들은 공산주의자다...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도망 갈 사람들이다..." 곧 이 내레이션의 주인공이 그를 추적하는 경찰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네루다를 속물로 묘사하는데 이게 정말 감독의 의도인가 의심스러웠다. 그러다 (스포일러) 나중에 이 경찰이 네루다의 상상에서 나온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즉, 그 냉소적 묘사는 네루다 자신이 한 것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이미지가 내레이션을 잘 받쳐주지 못한 것 같다.
세 번째 <혜영>이 재미있었다. 하지만 남자가 여자한테 맞는 걸로 웃음을 만들어내는 건 좀 자제해도 좋을 듯.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가 아주 영리하다. 하지만 리얼리즘과는 거리가 멀다.
러시아의 알렉세이 게르만 감독, 초면이었는데 상당히 좋았다. 종군 기자의 20일간의 휴가를 담았다. 러시아 영화를 많이 본 건 아니지만 2차대전 배경 영화는 러시아가 좋은 것 같다. 사실 미국이나 영국은 자국에서 전투가 없었고 (영국의 경우는 공습이 있었지만) 유럽 대륙의 대부분 나라는 금방 점령이 되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끔찍한 고난을 겪었다. 한 자료에 의하면 2차대전 중 민간인 사망자가 1,600만 명에 달했다. 그런 배경에서 깊이 있는 영화가 나올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도살장의 소, 돼지 등의 모습을 담았다. 픽션이지만 동물들이 나오는 부분은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동물에 대한 관객의 인식 전환이 목적이었다면 어느 정도 그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소 한 마리가 마지막 단계(인 듯함)에 안 들어가려고 버티는 장면이 있는데 - 전기봉으로 엉덩이를 계속 찔러도 오히려 뒤로 물러난다 - 죽음을 예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은, 그것에 감정이입이 잘 안 된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의 표정에서 공포를 읽는다. 그러나 소는 표정이 없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다. (소도 운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근거가 없는 것으로 안다. 소의 눈에서 물이 나올 수는 있지만 '우는' 건 아니다.) 소가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소 얼굴 클로즈업은 사람 얼굴 클로즈업과 같은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슬로베니아 록밴드 라이바흐의 북한 공연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재미있게 볼 수 있다. 공연이 2015년이었다는데 국내에 보도가 별로 안 되어서였는지 내가 관심이 없어서였는지 전혀 몰랐다.
러시아의 한 고등학교 학생이 종교적 광신자가 되어 어른(선생)들과 대립한다. 다양한 관점의 어른들이 있고 각자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있다. 근데 10대 아이가 그렇게 성경을 줄줄 외울 수 있나? 좀 연극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독일의 한 연극이 원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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