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주에서 본 것 중 가장 뛰어난 영화로 뽑고 싶다. 호주 가수 닉 케이브의 새 앨범 "Skeleton Tree"의 스튜디오 녹음과 그의 인터뷰가 중심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어떤 구체적 사건을 보여주기보다는 최근에 아들을 잃은 (2015년에 15세 아들 아서가 사고로 죽었다) 닉 케이브의 심리와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아들의 죽음은 거의 언급되지 않지만 영화 전반에 깔려있다.
음악과 흑백의 이미지가 좋은데, 다큐멘터리의 방법론 측면에서도 거론할 만한 게 있다. 닉의 내레이션 부분이 몇 군데 있는데, 이건 감독의 인터뷰 질문에 대답한 것을 보이스오버로 사용한 -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그러듯 - 것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냥 '독백'에 가까워 보인다. 예를 들어 처음 나오는 내레이션은 대략 다음과 같다: "어제 밤에 친구에게 메일을 보냈다... 요즘 시간이 고무줄처럼 여겨진다는 걸 말했다... 그는 멋진 답장을 보내왔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건 날 격려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다... 모든 일이 지금 생기고 있다면 난 지금 다큐 제작진이 이 망할 3D 카메라 가지고 씨름하고 있는 동안 기다리며 앉아 있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내겐 아무 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다." 감독이 어떤 질문을 해야 이런 대답이 나오겠는가? 짐작이긴 하지만, 닉에게 마이크를 주며 기다리는 동안 아무 독백이나 해달라고 요청했을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즉흥적으로 할 말이 별로 없을지 모르지만 닉은 노래 가사뿐 아니라 영화대본도 쓴 적 있는 사람이다.
다만, 이 내레이션이 나올 때 이미지는 말 내용과 별 상관이 없고 대화까지 있다. 그래서 처음 보는 사람은 혼란스럽다. 나도 인터넷에서 동영상을 찾아보고 파악한 것이다. 나중에 나오는 보이스오버 내레이션 부분들은 대사 없는 이미지(좋다!)라 혼란이 없다.
이 내레이션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다큐 제작과정을 숨기지 않는다. 피아노 주위에 깔린 원형 트랙 위에서 촬영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도 있다. 물론 제작과정을 드러내는 다큐멘터리는 있었지만, 인물의 내면을 솔직히 드러내는 이 영화에 잘 어울리는 것 같다.
3D로 촬영했는데, 처음엔 "이런 영화를 왜 3D로 만들었지?" 의아해했다. 그러나 보다 보니 나름 괜찮았다. 나 자신 작년에 3D 무용론을 주장하는 논문을 썼었지만 이 영화를 보니 영화에 따라 어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논문에서도 내러티브가 중요한 영화에서는 3D가 별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 영화는 내러티브가 없고 이미지와 말/노래와 분위기가 중요하다.
후반에 나오는 내레이션 시퀀스 중의 한 숏. 건물이 - 직사광을 받지 않는 그늘 부분조차 - 하늘보다 훨씬 밝다. 필터를 썼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surreal한 느낌.
노래 가사가 추상적이라 번역이 어려웠을 거라는 건 알지만 상당히 부실하다. 한 예로 "skeleton tree"를 '해골 나무"로 번역했다. "앙상한 나무" 혹은 "뼈만 남은 나무" 정도가 좋았을 것이다.
사소한 것 하나: 닉 케이브가 태어난 날이 나와 하루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