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화제에는 갔었지만 그 외엔 지난 몇 개월 동안 극장에 가질 못했다. 그러다 처음 본 것이
<인터스텔라>였다. 번역이 다 끝나기 전이었지만 한 수업에서 학생들이 수업 대신 영화를 하나
보자고 해서 본 것이었다.
학생들(대학원생 4명)은 다들 상당히 재미있게 본 것 같았다. 세대 차이인가, 지식의 차이인가,
그냥 취향의 차이인가.
두 가지에 대해서만 말하고자 한다. 하나는 블랙홀 문제다. 블랙홀을 살아서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 뻔한 것이다. 빛도 빠져 나오지 못한다는 곳을 어떻게 살아나온단 말인가. 그 중심,
소위 singularity라고 하는 것에 도달하기도 전에 갈가리 찢어질 것이다. 종이 같은 것을 갑자기
잡아채면 찢어지는 것과 같다. 지구에서는 약간의 높이 차이에 따른 중력(= 가속도)의 차이가
크지 않지만 블랙홀 중심에 다가가면 그 차이가 엄청나게 된다.
SF가 항상 과학적 사실에 충실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과학에 충실한 척하고
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 블랙홀 방문(?)이 이 영화에서 극적인 해결책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거의 deus ex machina 라고 할 수 있겠다. 말하자면 갑자기 신이 나타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말하고 싶은 건 과거를 방문하는 문제다. 과거를 '방문'해 역사를 바꾸게 되면 모순이
발생한다는 것은 다들 아는 듯하다. (과거로 가서 엄마와 아빠가 결혼을 못하게 만들면 어떻게
되나.) 그래서 이 영화도 마찬가지지만 <백 투 더 퓨처> 같은 시간 여행을 다룬 영화들은 결국
역사는 바꾸지 못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럴 걸 가지고 왜 다들 과거로 가려고 난리를 칠까.
시간 여행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를 무조건 폄하할 생각은 없다. 시간 여행은 우리의 삶에 대한
은유나 우화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인터스텔라>의 그것은 그렇게 봐줄 여지도 없어 보인다.
벽을 사이에 두고 암호를 주고 받는 건 또 뭔가. 나무 판때기가 무슨 고차원의 벽이라도 되나.
책은 움직일 수 있으면서 말은 왜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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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블랙홀에 다른 문제도 있다.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것이다. 영화 중에서도 중력 차이 때문에
한 행성에 착륙한 팀의 시간이 느리게 가는 장면이 있다. (그 행성에서의 1시간이 지구의 수
년이 되려면 중력이 엄청나야 할 것 같고 그렇다면 그곳에서 인간이 생존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 SF소설에 <게이트웨이>라는 게 있는데, 끝 부분에 주인공이 탄 우주선이 블랙홀에 빠져
들 위험에 처하는 상황이 있다. 벗어날 추진력이 충분치 않아 우주선의 절반을 버리게 되는데
(<인터스텔라> 중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와중에 주인공이 탄 절반만 탈출해
나오고 그가 좋아하는 여자를 포함, 다른 선원들이 탄 절반은 블랙홀로 떨어지게 된다.
의도적으로 그럴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주인공은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그 죄책감을 더 심각
하게 하는 것은 그가 늙어 죽을 때까지도 그들은 (시간이 느리므로) 여전히 떨어지고 있을 것
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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