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acation

idlemoon 2020. 8. 29. 23:44

Once there was a man who filmed his vacation.

언젠가 자신의 휴가를 촬영한 남자가 있었다.

He went flying down the river in his boat

그는 자신의 보트를 타고 강을 빠르게 내려갔다

with his video camera to his eye, making

비디오카메라를 눈에 대고 

a moving picture of the moving river

자신의 날렵한 배가 

upon which his sleek boat moved swiftly

휴가의 끝을 향해 신속히 이동하고 있는

toward the end of his vacation. He showed

그 흐르는 강의 동영상을 찍으며 (내려갔다).

his vacation to his camera, which pictured it,

그는 자신의 휴가를 자신의 카메라에 보여주었고, 그건 기록했다

preserving it forever: the river, the trees,

영원히 보존했다: 강, 나무,

the sky, the light, the bow of his rushing boat

하늘, 빛, 내달리는 그의 보트의 뱃머리

behind which he stood with his camera

그 후방에는 그가 카메라를 들고 서 있었다

preserving his vacation even as he was having it

휴가를 가지는 동시에 그것을 보존하며

so that after he had had it he would still

그래서 휴가를 다 가진 후에도 계속 그걸 가질 수 있게 (말이다)

have it. It would be there. With a flick

그건 거기에 있을 것이다. 스위치 하나만 젖히면

of a switch, there it would be. But he

그건 거기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would not be in it. He would never be in it.

그 안에 있지 않을 것이다. 한 번도 그 안에 있지 않을 것이다.

 

-- Wendell Berry

 

인간 존재에 대한 비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내 눈이 내 삶을 '기록'하지만 그 안에는 내가 없다. 물론 가끔 거울을 통해 내 모습을 보지만 그건 잠시다. 거울을 보는 시간은 대개 삶이 멈춰 있는 시간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거울을 보는 순간이라고 하더라도 그 거울 속의 내가 정말 나인가? 거울에 비치는 건 나의 껍데기일 뿐이다. 나의 기억과 감정과 생각은 거울에 비치지 않는다. 내 눈에 직접 보이는 내 몸(팔, 다리 등)에 대해서도 비슷한 말을 할 수 있다. (위 시에서 '보트'가 몸에 해당할 것 같다.) 내 몸과 나와의 관계는 절대적이 아니다. 몸이 바뀌어도 나는 나다. 몸뚱이가 없어도 나는 존재할 수 있다 - 적어도 상상으로는.

 

나의 정체성은 주로 내면세계에 의해 결정되는데 눈에 보이는 건 외면세계이므로 근본적으로 이질적인 것이다.

 

vacation이 보통 휴가를 의미하지만 '비움'을 뜻할 수도 있으므로 자신의 vacation을 촬영한다는 건 자신의 부재를 촬영한다는 의미도 될 것 같다. 그런 것까지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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