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는 하지 않았다 (I Just Didn't Do It, 수오 마사유키)
올해 전주에서 본 10여 편 중에서 최고였다. 시나리오가 거의 완벽하다는 느낌이다.
흥미진진할 뿐 아니라 사회 비판도 강렬하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억울하게 옥살이하는
게 나오면 그건 보통 부패한 권력 때문이거나 인종차별 같은 사회적 편견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좀 다르다. 피고인이 돈 없고 힘 없는 사회적 약자라서 재판을 건성
으로 하는 문제를 다룬 것도 아니다 - 그런 면이 전혀 없진 않지만 그게 중심은 아니다.
이 영화는 '무죄추정의 원칙' 그 자체를 다루고 있다. 딱히 독재정권이라서가 아니라,
국가의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기관이라는 건 그 본질적으로 유죄추정으로 기울게 되는
것을 절실하게 보여준다. (성추행은 그 특성상 증거가 있기 힘들고 그래서 유죄추정하는
경향이 강한 건 사실이지만, 내가 본 바로는 이 영화의 메시지는 성추행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막연히 교과서적으로만 알던 '무죄추정의 원칙'이란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라는
걸 이 영화를 통해 깨닫게 된다. 감독이 <샐 위 댄스> 이후로 10년만에 만든 영화란다.
박수를 쳐주고 싶다.
키사라기 (Kisaragi, 사토 유이치)
예측불허의 코메디. 그 큰 전북대문화관이 웃음과 박수 소리로 떠나갈 듯했다. 좀처럼
영화보며 웃지 않는 나도 몇 번 웃었다. (하지만 설정이 너무 황당해 깊이 동화되는 덴
한계가 있었다.) 키사라기에 대해 회상하는 장면을 애니메이션 느낌으로 처리한 것도
흥미로웠다. 키사라기의 얼굴을 계속 보여주지 않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보여주는 것도
재밌다. 그 얼굴이 뭐랄까, "깨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깸"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엘라의 계곡 (In the Valley of Elah, 폴 해기스)
얘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좀 진부하지만 결말은 (할리우드 영화치고는) 상당히 좋았다.
근데, 끝에 아들이 그렇게 된 이유, 사건을 보여주는데 그건 차라리 없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이를 친 것 때문에 그렇게 됐다구? 왠지 이유가 너무 착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건은 변명의 여지가 너무 많다 - 함정인 줄 알았고, 판단할 시간이 없었다
등. 하지만 가령 판단할 시간이 많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숙고한 후에 아이를 쳤는데 그게
잘못이었던 걸 알게 되었다면 가책이나 자학이 더 크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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