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틀이 나오기 전까지의 프롤로그가 좋다. 내가 좋아하는 바로 그런 초현실주의적 이미지다.
위 이미지(오필리아를 떠올리게 한다)를 포함하여, 다소 어디서 본 듯한 느낌들을 주긴 하지만.
본영화가 시작하면 폰트리에의 다른 영화랑 비슷하다. 흔들리는 카메라, 거친 컷, 단색조의 톤.
연기(명배우들이 많이 출연한다)랑 연출도 여전히 훌륭하다. 그러나 영화는 프롤로그 때 가졌던
기대에는 못 미치는 것 같다. 지구의 종말이라는 거창한 주제에 비해 주인공 저스틴의 우울은
뭐랄까 역부족인 듯하다. "지구는 사악하다"고 저스틴은 말한다. "지구의 생명은 사악하다"고도
말한다. 그래서 지구의 멸망은 응보로 여겨진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러나 그 사악함과 그것으로
인한 우울과 환멸을 저스틴이라는 사람 한 명이 감당(대변?)하는 건 역부족인 것 같다는 말이다.
<Dogville>과 주제가 비슷한 면이 있는데, 그건 다양한 군상을 보여줄 뿐 아니라 인간의 사악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상들도 나온다.
행성과의 충돌을 다룬 SF에 흔히 예상되는 것, 정부의 대응, 과학자들의 논의, 패닉에 빠진 군중
따위를 묘사하지 않은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런 것들을 보여
주지 않는 건 마치 죽음에 직면한 사람을 다루면서 그의 반응을 보여 주지 않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물론 이 영화에도 죽음에 대한 반응이 나온다. 그러나 몇 개인의 반응과 '인류'의 반응은
종류가 다른 것 같다. 인류의 멸망을 다루는 거라면 '인류'의 반응/대응이 나와야 하지 않겠냐는
말이다. (참고로 <Dogville>에서는 사람들이 멸망이 다가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반응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한 외국의 리뷰를 보니까 결혼 파티를 할 때부터 사람들은 행성의 접근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말하고 있는데 그건 좀 이상하다. 예술적 의도를 감안한다 해도, 사람들이 그걸 전혀 거론하지
않는 게 가능한가. 그러나 한편 저스틴이 맨 눈으로 볼 정도로 가까이 온 걸 과학자들이 모르고
있다는 것도 이상하다. (과학자들은 알지만 대중은 아직 모른다는 설정은 요즘 세상에 무리일
것이다.)
옛날에, 마지막을 남미의 산에서 밤하늘을 보며 맞고 싶다고 쓴 적 있다.
이건 그보다 더 환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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