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Stranger Than Fiction (2006)

idlemoon 2007. 7. 15. 17:08


논리적으로 이해가 좀 안 되는 것들 몇 가지만 (아래 참조) 접어둔다면 상당히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였다. 나레이션이 상당히 지적이다. 문학적, 영어로 말하면 literary 하다.
그리고 그런 언어를 구사하는 엠마 톰슨의 캐릭터가 아주 매력적이었다. 영문학 교수로
나오는 더스틴 호프먼도 흥미로웠다. 젊은 두 남녀의 로맨틱 코메디도 나쁘지 않았지만,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 건지, 중늙은이 소설가와 영문학
교수의 묘사가 훨씬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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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롤드는 작가(엠마 톰슨)의 산물 - 창조물 - 인가? 그렇다면 왜 해롤드의 일상(아침에
몇 시에 일어나고, 칫솔질을 어떻게 하고, 등등)에 대한 묘사는 있으면서, 그가 어느 날
그 묘사(나레이션)을 듣게 되고 거기에 따라 반응하는 것에 대해서는 묘사하지 않는가?
"그는 어느 날 아침 이빨을 닦다가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자신의 행동을 묘사하는 걸 듣게
되었다..." 하는 식의 나레이션도 있어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끝에 해롤드가 자신의 죽음이란 결말을 알면서 그것을 따르는 것도 잘 설명이 안 된다.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 그런 것 같은데, 왜 (자신이 작가의 산물이라면 그 아이도 그럴
테니) 그 애를 등장시키지 말라든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하지 말라든가 하는 요구를
작가에게 하지 않는가? 소설의 '작품성'을 위해 아이가 등장할 수밖에 없고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음을 이해한 건가? 글쎄, 물론 작가 자신은 그런 이유로 그 결말을 원했고 교수
(더스틴 호프먼)도 마찬가지였지만, 해롤드는 그럴 정도로 문학적 소양이 있는 사람인
것 같지 않다.

해롤드는 작가의 산물이 아니라 그냥 우연의 일치 - 소설 속의 해롤드와 실제 해롤드의
우연한 일치 - 인가? 그렇게 보기도 어렵다. 마지막에 작가가 그의 생명을 좌지우지하지
않는가? 그의 마지막 행동도 설명이 안 된다. 내가 어느 날 어떤 소설가를 만났는데 그가
쓰고 있는 내용이 나의 삶과 너무 똑같아 깜짝 놀랐다고 하자. 그러나 그렇다 해도 내가
그 소설의 결말을 따를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 소설에서 주인공이 어떤 아이를 구하려다
죽는다면, 그리고 나에게도 그와 똑같은 일이 생길 게 걱정된다면, 그 아이를 미리 -
결말을 아니까 그 아이를 미리 알 수 있을 거다 - 막을 수도 있고 버스를 미리 막을 수도
있지 않은가? 내가 그 소설의 문학성을 위해서 죽을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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