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1

Life of Pi

사람이랑 호랑이가 함께 바다에서 표류한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원작이 있다지만 어쨌든) 참신한 것 같다. 바다에서의 이미지들도 심심치 않다. CG로 만든 호랑이도 굉장히 사실적 이다. 진짜 호랑이면 저렇게 연기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닫지 않았다면 CG라는 것을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을 정도다. 하지만 영화는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바다에서 여러 번 나오는 환상적인 장면들은 - 바다 표면이 거울처럼 하늘을 반사한다든지, 물속 시점에서 배와 밤하늘이 보이는 장면 같은 것들은 - 물론 예쁘긴 하지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신의 섭리를 느껴라는 건가. 사람과 호랑이의 공존이 그렇게 환상적으로 아름답다는 건가. 그런 장면들은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다르다. 가령 노을..

영화 2013.01.16

Amour

200석이 넘는 극장에 나까지 다섯 명이 있었다. 토요일이고 서울극장이면 교통도 편한데 말이다. "이거 너무한 거 아냐?"라는 생각을 했는데, 영화를 보니 그럴 만했다. 영화가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라 젊은 애들이 좋아할 영화는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다. 긴 롱 테이크에 별 새로운 것 없는 내용인데도 내가 하품을 거의 하지 않은 걸 보면 잘 만들기는 한 것 같다. 하네케의 다른 영화에서도 느끼는 것이지만, 영화에 빈틈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리우스 콘지의 이미지들도 좋다. 하지만 내가 칸느 황금종려상에 대해 갖는 기대치에는 못 미치는 것 같다. 신선한 맛이 없다. 프랑스 영화가 아니었다면 상을 받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네케의 최고작"이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만, 난 그의 전작 이 더 나은..

영화 2012.12.23

피에타 (2)

이 영화를 본 학생 여러 명과 얘기해봤는데 나처럼 해석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난 나의 해석이 너무나 당연한 거라서 생각할 것도 없다고 여겼었다. 나의 해석은 이렇다. 장미선은 어떤 신적(神的)인 존재이다. 자살한 그 젊은이와 주인공 이강도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남녀가 그녀의 아들이며 딸이다(종교적인 혹은 정신적인 의미에서 그렇다는 거다). 그녀가 강림했다. 이유는 세상의 악이 극에 달해 (생물학적) 형제를 죽이는 (죽게 만든) 일까지 발생했기 때문이다. 장미선은 그냥 한 명의 인간이고, 아들의 복수를 위해 이강도 엄마 행세를 했다는 해석은 문제가 많다. 우선, 장미선이 엄마 행세를 하기 위해서는 이강도에게 엄마가 없다는 (엄마를 모르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

영화 2012.11.10

부산 2012

Cold War 액션 장면들은 봐줄 만하다. 명칭들이 낯설고 인물이 많아 조금 따라가기 힘들다. Like Someone in Love 키아로스타미의 최고작은 아닐지 모르지만 같은 억지스러움은 없다. Reality 유명한 리얼리티 쇼 '빅 브라더'에 미쳐가는 한 남자 얘기. 크게 신선하진 않지만 잘 만들었다. Post Tenebras Lux 올해 부산에선 '아주 좋았던' 게 없었지만 이 영화가 그중 좋았다. 초월적 분위기가 물씬하다. 다만 지나치게 난해한 면이 있다. After Lucia 아내를 사고로 잃은 남자와 그 (엄마를 잃은) 딸 얘기. 제목의 루시아는 그 아내/엄마 이름인 듯. 그런데 영화의 주된 내용은 딸이 새 학교에서 왕따 당하는 것이다. 그게 "루시아 이후"와 무슨 관계가 있나. 엄마가 있어..

영화 2012.10.20

피에타

재미 없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별로 기대를 안 했는데,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사실 영화 거의 끝날 때까지 재미 없었던 건 맞는데, 마지막에 '형제' 요소가 나오면서 영화에 틀과 무게감을 부여한 것 같다. 로케이션들도 좋은 것 같다. 피에타는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의 상인데, 이 영화랑 맞는 건가 싶다. '엄마'가 오히려 예수의 이미지에 가까운 것 같다. 근데 희생과 구원이라는 주제는 좋지만, 엄마의 언행은 그것에 2% 부족한 느낌이다. "너도 고통을 맛 좀 봐라"가 진정한 희생이며 구원인가. "내가 대신 죄값을 치르겠다"와 다르지 않냐는 말이다. 뭐, 같은 말인데 조금 다르게 표현한 것 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뭔가 부족한 느낌이 있었다.

영화 2012.10.03

Midnight in Paris

우선, 내겐 20년대 파리에 대한 향수가 *전혀* 없다. 그 시기에 관한 글을 가끔 읽긴 했지만 내게 향수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걸 전제하고 있는 것 같다. 20년대 파리를 왜 좋아하는가? 잘 알 수가 없다. 사실 이 영화는 그 시대에 대한 동경이라기 보다는 특정 작가/예술가들에 대한 동경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작가/예술가들이 그 시기의 중요한 부분이긴 했겠지만, 우리가 어떤 시대를 동경한다고 말할 땐 그런 것과는 조금 다른 걸 의미하지 않나. 그 작가/예술가들에 대한 묘사도 내가 문외한이라 그런지 별로 다가오는 게 없었다. 나로선 그냥 수박 겉핡기식으로 보였다. 한두 명에 집중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 아마 코미디가 되기 힘들지 모르겠다만...

영화 2012.07.14

Prometheus

가 얼마나 좋은 영화였는지 돌이켜 보게 만든 영화. 의 리들리 스콧은 어디 갔나. "prequel"이란 명목으로 재탕이나 하고. 과학자란 인간들이 너무 무식한 언행을 한다. 무게감이 없다. 그나마 작가의 양심(?)이 있는지, "너 과학자 맞냐"(정확한 대사는 기억 안 남) 식의 대사가 있다. 양심(?)이 느껴진 게 또 있다. 인간의 기원을 찾았다고 말하자 그럼 그 창조주(외계인)은 누가 만들었나는 질문을 한다. 이 대사는 (나에게) 그 창조주 외계인이 무의미하다는 걸 인정하는 양심선언으로 들렸다. 창조주가 뭐든, 그건 또 누가 창조했냐는 질문은 물론 언제나 가능하다. 고전적으로 말하 자면 지구를 떠받치는 거북은 누가 떠받치고 있느냐는 식이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의 기원에 대해 궁금해 한다면, 그건 물리학..

영화 2012.06.12

Melancholia

타이틀이 나오기 전까지의 프롤로그가 좋다. 내가 좋아하는 바로 그런 초현실주의적 이미지다. 위 이미지(오필리아를 떠올리게 한다)를 포함하여, 다소 어디서 본 듯한 느낌들을 주긴 하지만. 본영화가 시작하면 폰트리에의 다른 영화랑 비슷하다. 흔들리는 카메라, 거친 컷, 단색조의 톤. 연기(명배우들이 많이 출연한다)랑 연출도 여전히 훌륭하다. 그러나 영화는 프롤로그 때 가졌던 기대에는 못 미치는 것 같다. 지구의 종말이라는 거창한 주제에 비해 주인공 저스틴의 우울은 뭐랄까 역부족인 듯하다. "지구는 사악하다"고 저스틴은 말한다. "지구의 생명은 사악하다"고도 말한다. 그래서 지구의 멸망은 응보로 여겨진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러나 그 사악함과 그것으로 인한 우울과 환멸을 저스틴이라는 사람 한 명이 감당(대변?..

영화 2012.06.06

Armadillo

아프가니스탄에 평화유지균으로 파병된 일군의 덴마크 청년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이 영화의 핵심은 끝부분에 나오는 사건이다. 덴마크 군인들이 부상 당한, 저항 능력 없는 탈레반 몇 명을 사살한 것이다. 이것으로 덴마크 국내가 시끄러워졌고 진상조사까지 이루어졌다. 해당 군인들은 결국 "무죄" 선고를 받긴 했다. 영화 전체적으로 그런 면이 있지만, 탈레반을 죽이게 된 그 전투 장면도 뭐가 뭔지 잘 알 수 없다. 적이 어디 있고, 아군이 어디 있는지, 전체적인 공간적 상황은 어떻게 되는 건지, 혼란스럽다는 말이다. 감독의 인터뷰에 의하면 이건 의도적인 것이란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도록" 하는 게 의도였다는 것이다. "병사들 자신도 아마 몰랐을 것이다"는 말도 한다. 내 생각엔, 상황을 잘 ..

영화 2012.05.17

은교

이런 역할을 맡을 원로 배우가 우리나라에 없나. 젊은 박해일이 계속 보여서 당최 몰입이 되지 않았다. 박해일을 모르거나, 알아도 그보다 젊은 관객이 보면 또 어떨지 모르겠다. 어쨌든 내 입장에선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것이었다. 시인이 주인공인 영화면 감탄할 만한 대사가 몇 개 있어야 하지 않나. 뭐 이 역시 나 같은 먹물이나 가지는 욕심일지 모르겠다. 70대 노시인이 10대 여자애를 좋아한다...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애의 매력이 좀 더 부각되어야 하지 않을까. 젊은 남자가 젊은 여자를 좋아하는 얘기라면, 그 여자가 내가 보기에는 별로라고 하더라도 그냥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이건 워낙 있기 힘든 경우이기 때문에 여자애의 매력이 말하자면 설득력이 있어야 하지 않냐는 것이다. 물론 예..

영화 2012.05.12